그리곤 "세상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실패를 하더라도 성공을 하더라도 뭐든 도전해 본다는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시며, 나의 재취업을 응원해 주셨다.
-그 후로도 내가 근무하며 종종 해주신 이야기인데, 나에게 큰 용기가 되어준 말씀이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그것도 면접을 보러 가서, 오히려 위로와 용기를 받았다.
여기 면접을 보고, 바로 엄마한테 날아갈 듯 기뻐하며 전화 통화를 했었는데, 엊그제 엄마에게 구구절절, 대한민국의 여성의 현실부터 어쩌고 저쩌고 한 기억들이 떠올라서 살짝 민망하기도 했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다 큰딸이 땅으로 꺼졌다가, 하늘로 날았다가, 참 어이가 없으셨을지도 싶다.
여하튼,
일가친척이 근처에 없다고 말씀을 드렸음에도 오히려 풀타임 근무도 잘할 것 같다며 권해 주셨지만,
나는 아무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폐를 끼칠 것 같아서, 원래 하려고 했던 파트타임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파트타임이라도, 나는 내가 취업을 준비하면서 다짐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지각과 결석은 하지 말자!
(특히 아이 때문에....라는 이유로 결석은 하루도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다)
둘째, 나보다 나이가 어린 상사가 있더라도 절대로 속상해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첫 번째 결심을 지키기 위해 나는 아이가 아플 때 대비하여 늘 비상약을 종류대로 준비해 두었고,
비상시 정부에서 운영하는 아이돌보미 서비스도 바로 연결이 될 수 있도록 신청해 두었다.
아이들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해야 내가 결근을 하지 않을 수 있으니,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이라도 무리한 일정의 여행이나 외출은 하지 않았다.
여름엔 동네 곳곳에 물놀이터가 있었는데, 혹시나 수족구나 눈병에 옮을까 봐 그 길을 지나다 다른 친구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속상해할까 봐 다른 길로 일부러 피해 다니기도 했다.
아이들이 아픈 낌새가 보이면, 미리 병원에 진료받고 약도 아주 경미한 증상만 보여도 예방(?) 차원에서 먹였다.
그리고 두 번째 결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금은 힘들고 어려운 결심이긴 했는데) 나의 자존심을 저 아래 바닥에 내버려 둔다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
결혼 전 나는 성격이 빠릿빠릿한 편이었다.(내일 일을 오늘 할 만큼 급했다!)
또한 일을 대강? 철저히(나의 모토이다!!) 하는 성격이라, ‘센스 있다! 빠르다! 일 잘한다’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그런데... 오랜 단절 끝에 재취업을 했더니, 일단 일이 주어지면(예전엔 바로 입력이 되어 몸이 바로 움직였는데) 머릿속 회로를 한번 더 돌려 해석을 한 후 일을 해야 했다.(감각이 둔해진 듯했다..ㅠ.ㅠ)
어느 날은 어떤 업무를 너무 당연히 이 방법으로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아주 자신 있게 했더니
너무나 다른 저 방법으로 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 좌절감이란ㅜㅜ!!!)
왕년에는 또 문서 편집하면 그래도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비록 10년 전 자격증들 이긴 하지만 컴퓨터 쪽으로 자격증도 몇 개 있다.)
라테는! 한글 97을 사용했었는데.. 이젠 너무 최신 버전들이라, 도구 바만 클릭의 클릭을 하다 하루 반나절이 다 흐르곤 했다.(정말 슬펐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