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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Jan 08. 2024

기준을 높게 세우세요.

이규보 <우렛소리>

우레가 칠 때는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뇌동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우렛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잘못한 일을 거듭 반성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기에 그제야 몸을 펴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나는...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눈길을 떼지 못한 일을 잘못이라 여겼다. (중략) 또 한 가지 인지상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고, 비방하면 안색이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우레가 칠 때 두려워할 일은 아니지만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옛날에 어두운 방에서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주 1)?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를 읽다가, 한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포티다이아'라는 곳에서 격돌하였는데, 그리스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탁월한 용기를 보여준 사람에게 승리의 영광을 돌리고, 그에게 상금을 주자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탁월한 도덕성으로 인정받던 스파르타 인들에게 결정권이 주어졌고, 그들은 아리스토데모스라는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곧 그들은 결정을 번복하고 그에게 상금을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아리스토데모스가 과거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지 않고, 부상을 당한 채 스파르타로 돌아왔었는데, 그 일로 책망을 받은 그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번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용맹하게 싸웠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테르모필레 전투 - 레오니다스 왕과 300명의 전사 / 출처 : 네이버 이미지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 왜 결격사유라는 것인가?'

그러나 여기에 그들과 나의 차이, 덕에 대한 기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은 아리스토데모스의 용덕에 불순물이 섞여 있다고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순수한 용맹이 아니라 '과거 책망받은 것에 대한 속죄'라는 불순한 의도로 용맹이라는 덕을 발휘한 것이니, 상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체의 목적이 배제된 순수함 자체로서의 용맹, 그것이 아니면 칭찬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뭐 그렇게 까탈스럽게 구나! 그렇게 보면 세상에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몽테뉴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판단력은 병들어서 타락한 풍속을 좇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우리 시대의 정신들이 옛사람들의 행동을 비굴하게 해석하고 그들에게 헛된 사정과 원인들이나 꾸며 붙이며, 고대의 아름답고 후덕한 행적들의 영광을 더럽히는 약은 꾀만 쓰는 것을 본다(주 2).


글을 보면서, 고대인들의 지고하고 드높은 덕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규보는 옛사람들처럼 우렛소리를 듣고 자신의 허물을 반성합니다. 그런데 그가 떠올린 허물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눈길을 떼지 못한 것,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을 때 몸을 피하기는 했으나 마음만은 없어지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칭찬받았을 때는 기뻐하나 비난받았을 때는 안색이 바뀌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매우 사소한 것이지만, 그는 혹여 이런 것들이 하늘의 경고가 되지 않을까 경계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여인을 향한 마음이 지나쳐 그릇된 방향으로 충족시키려 하거나, 남에게 비난받은 것이 안색이 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분노, 미움, 앙갚음, 음해하는 마음으로 변질될 수 있으니 늘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게으름을 부리고, 자신을 정당화하고, 변명하고 핑계를 대는 나,

해야 할 것들은 미뤄놓은 채, 즐거움과 위안거리만 찾아 두리번거리는 나,

나를 들여다보는 것은 게을리하면서, 세상과 사람을 판단하고 재단하려는 나,

세상 탓, 남 탓, 환경 탓, 무슨 무슨 탓만 하면서 책임을 떠넘기려는 나,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선하지 않은 일도 눈 감고 넘어가려 하는 나.


우렛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며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결코 그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도 기준을 높게 세우고, 거기에 이르도록 노력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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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이규보 외, <한국 산문선 1>, 2018, 민음사

주 2) 몽테뉴,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2005,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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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 금 - <거장에게 듣는 지혜>

⁕ 수, 일 - <사소한 일상은 인생의 최종손익결산>


목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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