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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Jan 18. 2024

사흘이면 괄목상대?

최해 <괄목상대할 그날을 기다리며>

이제 중부가 황성에 조회하러 가면 그 거대하고 화려한 볼거리가 소철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오. 지금의 호걸 중에서 한기나 구양수와 같은 사람을 만나서 뜻과 기운을 격동하여 성취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훗날 돌아오거든 필시 오늘 본모습과 다른 점이 있을 것이오. 선비가 사흘 동안 헤어져 있으면 괄목상대(刮目相對)한다는 말이 어찌 빈말이겠소(주 1)?


'괄목상대(刮目相對)'

눈을 비비고 상대편을 본다는 뜻으로, 남의 학식이나 재주가 놀랄 만큼 부쩍 늚을 이르는 말이다(주 2).


이 글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세속에 아부하지 않고 성품이 강직했던 최해가, 당시 서장관(주 3)의 신분으로 원나라에 가는 정포에게 지어준 글로, 넓은 세상을 보고 한 사람의 선비로서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 글이다. 송나라의 문인 소철이 뛰어난 글을 쓰기 위해 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겨 먼 곳으로 유람하고 뛰어난 인물들을 만난 것을 예로 들면서, 원나라의 뛰어난 문화와 인물을 보고 장대한 기상을 길러 오라고 당부한 것이다.


어떻게 삼일이라는 시간 동안 사람이 못 알아볼 만큼 변할 수가 있을까? 기연을 만나지 않고서야 그렇게 변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참다운 선비'라면, 지금 모습보다 미래가 나아질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식 내지는 관념이 들어있는 것 같다.




'선비가 사흘 동안 헤어져 있으면 괄목상대한다는 말이 어찌 빈말이겠소?'


출처 : pixabay

이 구절을 카톡 프로필 문구에 새겨 넣고, 나도 '그렇게 성장해 보리라' 다짐하곤 했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외롭고 고독한 시간 속에서, 언제 끝날지조차 알 수 없는 막막한 길 위에 서서, 나는 그렇게 '괄목상대'할 날을 기대하며 외롭게 싸웠다.

'이런다고 누가 나를 알아주기나 할까?'

'세상에 실력 있고 능력 많은 사람들이 즐비한데, 내가 누구길래 그들과 견줄 수 있다는 말인가?'

'더 넓은 세계로 나가 뛰어난 문물을 접하고 탁월한 사람들을 만나 배울 기회가 많은 사람들이 오죽이나 많은가? 그들에 비해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나?'

나는 내가 비루한 벌레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면, 꾸준히 노력한다면 사흘 만에 괄목상대하지는 못할지라도, 10년 후라면 훌쩍 성장해있지 않을까?


역사를 공부해 보겠다고 문화유산을 찾아 들개처럼 쏘다녔던 날들, 딴에는 고전을 섭렵하겠다며 도서들을 두루 찾아 읽고 영화와 뮤지컬까지 뒤적였던 나날들, 과학 공부를 위해 교수님들을 초청하여 강의를 듣고 그 어려운 서적들을 독파하던 시간들, 그리고 되도록 여러 분야에 걸쳐 얕은 지식이라도 얻어보려 도서관을 전전했던 시간들.

이 한 구절만 들을 수 있다면 지난 내 모든 시간들을 보상받고도 남을 텐데...


그러나...

괜찮다.

그렇게 보냈던 시간 자체가 내게 행복이었으니까.

그리고 듣지 않아도 좋다.

내가 조금이라도 성장한 모습으로 남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면.

참다운 선비가 괄목상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일까?

아니다.

관직에 나가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을 살 찌우기 위해서다.

설령 초야에 묻혀 백성과 함께 할지라도 그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다.

그런 마음가짐이 아니라면 괄목상대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출처 : pixabay

운이 좋게도, 나는 서로의 성장을 돕고 함께 성장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내가 노력했던 시간들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고, 또 누군가의 성장을 돕고 있다.

우리 모두가 괄목상대할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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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이규보 외, <한국 산문선 1>, 2018, 민음사

주 2) 출처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korean.go.kr)

주 3) 서장관 : 외국에 보내는 사신 가운데 기록을 맡아보던 임시 벼슬. 출처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kore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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