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보도 새퍼 <멘탈의 연금술>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순박한 농민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며 철학자들도 선량한 사람들이다. 적어도 우리 시대에 유익한 학문의 폭넓은 교양을 풍부히 쌓고 천성이 강직하고 명철한 학자들 말이다. 농민들의 배우지 못하고 알지 못함을 경멸하지만, 학자가 되는 길에 이르지 못한 얼치기들은(두 안장에 엉덩이를 걸친 격이니 내가 그들이며, 세상에는 이런 축들이 많다) 위험하고 어리석고 주체 못할 인간들이다. 이들이 세상을 혼란시킨다(주 1).
교육을 받지 못한 순박한 농민들은 타고난 천성대로 선량하여, 영악하게 머리를 굴려 남을 이용하거나 술수를 부리지 않으니 세상에 해가 되지 않는다. 한편, 철학자들은 폭넓게 교양을 쌓아 세상을 밝히 보는 이치와 원리를 터득한 사람으로, 선량한 마음 바탕을 흐리지 않는 참다운 배움을 실현한 사람들이다. 순박한 농민들과 철학자들은 세상을 혼란시키지 않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선량한 천성 그대로를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어중간한 사람들이 있다. 배우기는 하였으나 궁극적인 배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 몽테뉴는 그들을 가리켜 '얼치기'라고 표현한다. 그들은 순박한 농민 쪽에 한쪽 엉덩이를, 철학자 쪽에 한쪽 엉덩이를 걸치고 있다. 그래서 선량한 천성 그대로의 순박함도, 철학자의 명철함도, 무엇하나 제대로 지니지 못한 반쪽짜리들이다. 몽테뉴는 자신 또한 거기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게 본다면 얼치기가 아닌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즘 세상에 교육을 받지 못하여 무지몽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학문의 깊은 곳까지 통찰하여 세상의 이치와 원리를 통달했지만, 선량한 천성을 유지하면서 천변만화하는 세상에 물들지 않고, 세파에 휘둘려도 진실한 마음을 강직하게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르긴 해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얼치기에 해당할 것 같다. 그래서 세상이 그렇게도 혼란스러운가 보다. 그러나 아무리 얼치기라도 잘 살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보도 섀퍼는 성공하려면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라고 한다.
네가 얼치기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나보다 더 나를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구하라. 그런 사람을 가진 사람은 더 멀리 갈 수 있다(주 2).
사람은 수많은 감정 기복에 둘러싸여 자신을 잘 보지 못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한다.
'확증 편향의 오류투성이 인간'.
그것이 우리 자신에 대한 가장 명쾌한 정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래서 보도 섀퍼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거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당신이다. 그리고 나다. 당신과 나, 우리는 자신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주 3).
'그래도 좀 배웠는데, 이 정도 경험을 쌓고 교양을 쌓았는데, 나에 대해 모를까?'
그러나 아니다.
자신이 얼치기라는 것을 모르는 것, 이것이 사람이 가진 가장 큰 곤란함이자 어려움이다.
그래서 내 곁에서 내가 누군지 잘 볼 수 있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
내가 얼치기라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워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가 진실한 마음으로 조언해 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만일 누구라도 나의 생각이나 행위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이를 나에게 이해시킬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바로잡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탐구하는 것은 진리며, 진리는 오직 아무도 해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오류와 무지 속에 처해 있는 사람은 손상을 입는다(주 4).
보도 섀퍼는 이것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마음 자세라고 말한다.
그리고 몽테뉴가 말한 '얼치기'들이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주 1) 몽테뉴,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2005, 동서문화사
주 2,3) 보도 섀퍼, <멘탈의 연금술>, 2022, TORNA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