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열전>
풍환이 말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 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고 나서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길을 끊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주 1).”
빈객 중 한 사람이 공자에게 말했다.
“세상일에는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고, 또 잊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주 2).”
중국 춘추전국시대는 수많은 군소국가들이 난립하여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전국 시대는 세력다툼이 더욱 치열해진 시기였는데, 점잖은 사상은 설 자리가 없고 계략과 술수가 난무하던, 그야말로 힘이 정의였던 시대였습니다. 여러 나라로 갈리어 힘을 겨루다 보니, 인재의 영입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전국시대에 '전국 사공자'라 불리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나라의 맹상군 전문, 조나라의 평원군 조승, 위나라의 신릉군 무기,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이들은 빈객 3,000여 명을 거느릴 만큼 위세가 있었는데, 그만큼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재를 초빙하여 그들의 생계를 돌봐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맹상군 전문에게는 좀도둑과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좀도둑과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곤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를 구해낸 사람이 이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빈객들은 사병이 되기도 했습니다. 신릉군 무기의 가장 두드러진 공적이 조나라를 도와 진나라를 무찌른 일이었는데, 이것도 빈객들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유명한 병법서 <위공자 병법>은 무기의 빈객들 중 뛰어난 사람들이 있어 병법을 적어 올린 것이었습니다.
전문의 빈객 중에 풍환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지혜가 뛰어나 전문에게 빚진 사람들이 빚을 갚지 않아 파산할 지경에 이르자, 잔치를 베풀어 빚을 받아내기도 하였고, 주군이 벼슬에서 쫓겨나게 되었을 때, 진나라와 제나라의 두 왕을 움직여 전문을 재상의 자리에 다시 앉히기도 하였습니다.
전문이 관직에서 쫓겨나자, 빈객들이 더 이상 그를 의지해 살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러다가 풍환의 지략으로 다시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데, 빈객들을 다시 모으면서 전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빈객을 좋아하여 그들을 대접하는 데 실수가 없도록 힘썼소... 그러나 식객들은 하루아침에 내가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자 나를 버리고 떠나가 나를 돌봐 주는 사람이 없었소... 만약 다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어 크게 욕을 보이겠소."
사람이라면 응당 그런 말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풍환이 수레에서 내려와 절을 하면서 전문에게 말합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빈객들은 험한 세상에서 자신의 재주를 믿고 거두어준 사람에게 생계를 맡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관직을 잃어 더 이상 그들을 보살펴줄 수 없는 사람에게 남아있는 것이 당연히 지켜야 할 의리일까요? 그들에게 더 이상 살 곳과 먹을거리를 줄 수 없는 사람에게 남아있는 것은 오히려 짐이 될 뿐입니다. 무엇보다 거친 세상에서 식솔들을 먹여 살려야 할 의무가 있으니, 살 길을 찾아 떠나는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면서 이런 일들을 종종 만납니다. 아낌없이 베풀어 주고, 재주를 아껴주고, 누구보다 가까이하면서 많은 것을 함께 나누었던 사람, 진심을 주고 전적으로 믿어주었던 사람이, 어느 날 아무 말도 없이 떠나가는 일들 말이지요. 그럴 때마다 사람에 대한 회의가 생기고, 사람은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사람은 생긴 대로 살다 가는 것이라고 허탈하게 웃기도 했습니다. 세상도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자신을 병들게 할 뿐, 나를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땅은 그저 있을 뿐이지만, 그곳에 씨앗이 떨어져 큰 나무가 되기도, 아름다운 꽃을 맺기도, 풍성한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때로는 동물이 죽어 냄새나는 사체가 떠맡겨지기도 하지만, 냄새가 난다 하여, 더럽다 하여 물리는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온몸으로 안아주고, 오랜 시간 품으면서 잘게 부수어 양분으로 만들고, 또 다른 생명이 자랄 수 있도록 영양을 공급해 줍니다. 땅은 그들이 오는 것을 받아주고 삶터를 내어 줄 뿐, 그들을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 내게 있다는 것일 텐데, 그것 또한 감사할 일인 것 같습니다.
다만 나를 속여 이용하거나 해를 입히려는 의도 정도는 헤아릴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겠지만 말이지요.
그래서 위나라 공자 무기의 빈객도 이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주 1, 2) 사마천, <사기 열전>, 2021,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