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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Sep 10. 2023

일소(一笑)

에머슨 수상록

거대한 제국을 거느렸던 제왕들을 한낮 웃음거리로 여기고 무시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라니...

단지 정신 승리일까?


에머슨의 수상록을 읽으면서 발견한 것은 다른 차원의 정신이며 삶이다.


"나에게 건강과 하루를 달라. 그러면 나는 제왕의 영화도 일소(一笑) 붙이리라(부치리라). 새벽은 나의 앗시리아이다. 일몰과 월출은 나의 파포스이고, 상상도 미칠 수 없는 신선경이다. 대낮은 나의 지각과 오성과의 영국이 되고, 밤은 나의 신비한 철학과 꿈의 독일이 될 것이다."


마음을 열어 별을 바라보면, 별은 숭고미의 영원한 실재를 인간에게 준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을 피상적으로만 바라보는 '어른'의 눈이 아닌, 순수한 유아의 정신으로 바라볼 때 가능하다.


자연은 말한다.

"저이는 나의 창조물이다. 그러니 아무리 부당한 슬픔이 그에게 있을지라도 그가 나와 함께 있음으로써 즐거울 것이다."


자연의 이 음성을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사람은, 에머슨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에머슨은 자연 속에 서 있을 때, 자신이 하나의 투명한 안구가 되고, '무(無)'가 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우주적 존재의 흐름이 자신을 뚫고 순환하는 것과 자신이 신의 일부분이며, 하나의 조각인 것을 느낀다. 들이나 숲이 주는 희열은 나는 고독하지도 않고, 인정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자연은 신이 인간에게 베푸는 자비의 손길이며, 인간에게 봉사하는 데 있어 사용되는 재료이며, 과정이고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머슨은 집 맞은편 언덕 꼭대기에 서서 새벽부터 해가 뜰 때까의 아침 경치를 바라보며, 천사가 느낄 듯한 정서를 체험한다고 말한다. 몇 가닥 긴 구름 줄기는 진홍빛 바닷속을 물고기처럼 헤엄치고, 자신은 그 고요한 바닷속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바닷속의 무궁한 변화에 참여하는 듯 생기발랄한 마력이 몸에 밀려들어 와, 자신 또한 부풀어 오르고, 아침 바람과 더불어 움직인다.

그때 느끼는 것이 신성(神性)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제국을 호령했던 제왕들의 영화도 한낮 웃음거리로 여기고 무시해 버릴 수 있는('일소'一笑) 광대하고 초월적인 충만감이다.


세상의 모든 만물, 우주가 신의 것인데, 신성을 공유하고 느낀 그 순간, 제국의 영화가 무슨 대수겠는가?


어떤 종교적 신념을 떠나 자연을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직관하고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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