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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Sep 26. 2023

말, 말

얼마 전 <키케로의 인생론>을 읽다가 재밌는 구절 하나를 발견했다.


스키피오와 라일리우스라는 두 청년이 카토(대 카토)를 찾아왔는데, 이들은 노년을 그토록 편안하게 보내고 있는 그에게 매력과 호기심을 느끼고, 그 비결이 무엇인지 배우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카토는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대략의 이야기는 이렇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세리포스 섬사람과 언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자기 자신이 아니라 조국의 영광 덕분에 명성을 얻었을 뿐'이라며 깎아내리고 비아냥거리는 것을 보고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오. 만일 내가 세리포스 사람이었다면 유명해질 수 없었겠지. 하지만 당신은 아테네 사람이었다 해도 유명해지는 것은 무리였을 거요."


앞부분만 보면, 상대방의 말을 인정하고 언쟁에서 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뒷부분에서는 상대방의 터무니없는 근거와 논리를 무너뜨리고, 오히려 비난했던 상대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어떤 상황과 환경 덕분에 명성과 권세를 얻었을 뿐이라는 논리를 펴는 상대에게, 환경과 상황이 아니라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과 철학, 온갖 덕과 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그의 삶의 태도가 명성과 권세를 가져온 것이라고 반박하는 것이다.


카토는 테미스토클레스가 한 말의 형식을 빌려 그들에게 노년에 대해 이렇게 말해준다.

"현자라 해도 극도의 결핍 속에서는 노년이 가벼울 수 없지만, 어리석은 자에게는 태산만 한 재산이 있어도 노년은 무거운 법이라네."


카토는 테미스토클레스의 말을 적절하게 인용하여, 상황과 환경이 노년의 편안함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과 훌륭한 마음가짐, 덕을 닦고 실천해 온 그의 삶이 켜켜이 쌓여 노년의 편안함을 가져오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말을 잘하면 이렇게 멋있고 훌륭할 수가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뤼쿠르고스' 편에도 말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가 나온다.


뤼쿠르고스는 기원전 800년경 활동했던 사람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포괄적이고 철저한 개혁을 시도했던  스파르테(스파르타)의 입법자였다.

당시 아이들은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교육을 받았는데, 말을 하는 방법도 체계적으로 배웠다.

'말은 근거와 논거가 있어야 하고, 짧고 간결한 표현으로 압축해야 한다.'

'말은 날카로우면서도 우아하고, 적은 말속에 많은 성찰을 담아야 한다.'

요는 간결함과 의미심장함이다.


뤼크르고스는 짧고 의미심장한 표현을 자주 사용했는데,

예를 들면, 정부 형태에 관련하여 도시에 민주주의를 세우기를 요구하는 사람에게(뤼크르고스의 정부 형태는 민주주의와 다르다)

"그대부터 먼저 집안에 민주주의를 세우시구려."라고 답변했다던가,

성벽에 관한 물음에는

"도시는 벽돌이 아니라 전사들로 둘러싸여야 제대로 된 성벽을 가졌다 할 수 있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짧은 문장 하나에 자신의 정치 철학을 담아내면서, 비난을 무마시키고 자신을 훌륭하게 변호하였다.


영화 '300'의 영웅 레오니다스 왕의 일화도 기록되어 있다.

누군가 시의에 맞지 않게 중대한 일을 논의하기 시작하자, 레오니다스 왕은

"여보게, 그대의 말은 옳으나 시의에 맞지 않네그려."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가의 중대사를 논하는 것은 필요하고 긴급한 일을 수도 있으나, 그것보다는 시의적절한 말을 미덕으로 여기는 스파르테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말에 우아함을 갖춰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고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수완을 엿볼 수 있다.


어느 아테나이의 웅변가가 라케다이몬 인들은 무식하다고 선언하자 플레이스토낙스는

"옳은 말이오. 우리야말로 그대들에게서 나쁜 것을 하나도 배우지 못한 유일한 헬라스인들이니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을 비난하는 상대를 훌륭하게 받아치는 수완이다.


데마라토스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뜬금없는 질문들로 성가시게 괴롭히면서

"스파르테인들 가운데 누가 가장 훌륭하냐?"라고 물고 늘어지자,

"그대를 가장 닮지 않은 사람이겠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만 좀 성가시게 하고 져 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참 날카로우면서도 우아하게 한다.




침묵은 금이라고 하는데, 말을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말을 잘하는 것 역시 금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의적절하고 미덕을 갖춘 말은 아름답고 우아하다.

말은 되도록 안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해야 할 때는 되도록 간결하게, 그렇지만 깊이 성찰한 뒤에 논리를 갖추어 생각을 정연하게 담아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말도 훈련하고 연습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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