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먹성 좋은 토끼 한 마리가 산다.
매실나무가 심긴 비탈 주변으로 펜스를 두르고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는데,
바닥이 흙이라 여기저기 굴을 뚫어놓는다.
나는 농로를 따라 산책을 다니곤 했다.
농로 옆으로는 산이 있고, 그 사이로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들어진 수로가 지나간다.
음악을 들으면서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토끼 한 마리가 보인다.
'응? 웬 토끼? 한번 잡아나 볼까?'
조심히 다가가 본다.
그런데 이놈, 도망가지를 않는다!
가만히 손을 뻗어 두 귀를 잡고 들어 올렸다.
'우하하하...뭐야 이거! 왜 이렇게 쉽게 잡혀?'
벙글거리며 길가로 나오는데, 풀숲에서 또 한 마리가 깡충거리며 나온다.
'혹시 이놈도?'
그렇게 양손에 한 마리씩 잡고 길가로 나왔는데, 어쩐다?
막상 잡고 보니 집도 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토끼를 잡았는데 차 좀 가져와~"
"뭐 잡았다고??"
"토끼 잡았다고~~"
"헐..."
한 손으로 두 마리의 토끼 귀를 한 짝씩 잡고 전화를 걸고 있는데, 뭐가 자꾸 엉덩이를 '툭툭' 건드린다.
돌아보니 토끼 하나가 주변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게 뭔지 아는가?
그놈 뒤로 7마리가 도로에 나와 줄지어 뛰어다니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조금 있으니 동생이 도착한다.
그런데 이놈들, 동생이 도착할 때까지 하나도 도망가지 않고 주변을 뛰어다닌다.
우리는 황당한 상황에 재밌어하며 토끼들을 잡아 트렁크에 실었다.
모두 10마리였다.
"아무래도 얘네, 주인이 키우다가 내다 버린 것 같아."
동생이 말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사람한테 다가올 리 없다는 것이다.
잡을 때는 재밌었는데, 버려진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자 문득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모두 분양하고 더러는 죽고 해서 한 마리만 남아있다.
처음에는 버려진 아이들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애지중지 싱싱한 풀을 뜯어다 주고 같이 놀아주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하루 동안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놀랄 때가 있다.
그렇게 아껴주는 개의 바로 맞은편에 있음에도 먹을 것을 주기는커녕,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니!
내 눈에는 개만 보였던 것이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사랑과 애정을 주겠다고 정성을 쏟을 때는 언제고,
이제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다니!
외롭게 혼자 남아 있는 토끼를 보면서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 마음이 한결같지 않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 마음 또한 변한다는 것을.
나만 그런 건가?
귀하다, 늘 한결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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