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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Dec 17. 2023

 김공장 이야기 1

"너는 우리의 친구야!"

"팀.장.니이임~!!!"


명절을 앞두고 헐떡거리며 돌아가던 기계가 또  말썽을 부린다.

나와 한 팀을 이루어 김봉지를 포장하던 누님이 날카로운 소리로 관리부 팀장을 부른다.

목소리가 얼마나 하이톤인지 덜거덕거리며 돌아가는 기계 소음을 뚫고 공장 전체에 울려 퍼진다.

목소리에는 짜증과 신경질이 잔뜩 묻어있다.

그럴 수밖에.


노후된 기계가 한계에 부딪혔는지, 손을 본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또 오작동을 일으킨다.

기계를 설계한 기술자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고 선을 그었으니,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런 날들이 두 달간 계속됐다고 생각해 보라.

인내심이 한계에 부딪히지 않겠는가?

원래는 10월에 새 공장으로 이주할 계획이었는데,

노조가 파업을 일으키는 바람에 새 공장으로의 이주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내가 일했던 김공장은 상가 건물 1층을 임대하여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영세 사업장에서 열댓 명 정도가 일했다.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30분에 작업 종료.

그러나 작업이 끝난 후에도 1시간가량 청소를 해야 다.


평소에는 그다지 바쁘게 돌아가지 않지만, 명절을 앞두고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일용직 근로자들이 충원되고, 쉬고 있던 기계도 돌아가고, 연장 근무는 기본에 야간 근무까지 추가된다.

휴일도 없이 돌아가는 나날이 두 달간 계속됐다.

정말 이렇게 일하다가는 몸이 고장 나겠다는 것을 몸이 스스로 느낀다.

일 잘하는 태국 근로자들까지 힘들다고 넌더리를 낼 정도니, 말 다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베테랑 직원들은,

옛날에는 철야작업도 했다고 큰소리치면서 꾀병을 부린다고 호통을 친다.


처음 공장에 들어와 일을 시작했을 때는 저녁을 먹고 나면 바로 곯아떨어졌다.

몸도 여기저기 안 아픈 구석이 없다.

그렇게 적응하기까지 한 달을 고생해야 한다.


김공장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 준 소중한 곳이었고,

우리 이웃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해 준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그 덕에 '테니스 엘보'라는 훈장을 받기도 했지만...




공장을 나온 뒤 아홉 달이 지나 새 공장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다.

공장의 규모도 훨씬 커졌다.

새 건물에 자동화된 시스템과 기계들, 쾌적하고 위생적인 근무 환경, 깔끔한 직원 식당, 직원들을 위한 여가 공간 등, 입이 '떡~' 벌어진다.

숨이 턱턱 막힐 만큼 좁았던 옛날 공장,

일일이 손으로 다 들어 나르고,

직원이 부족하여 한 사람이 두 세 사람 몫을 감당해야 했던 예전의 공장 모습이,

박제된 흑백 사진처럼 눈앞에 어른거린다.


예전 조그만 공장에서 함께 일했던 태국 근로자가 함박웃음으로 맞아준다.

바쁘게 일을 하고 있어 얼굴만 마주치고 눈인사를 해 줄 뿐,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억척같이 일하면서 연장, 야간, 주말 근무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제 자리를 지켰던 사람이다.

내가 그만두던 날 많이 아쉬워하면서 계속 같이 일하자고 했었는데,

나는 더 이상 이들과 함께 할 수 없었다.


따, 꿍, 펄, 린, 오이, 물...

이젠 하나둘씩 이들의 이름이 잊혀 간다.

처음으로 함께 일해봤던 외국인 노동자들.

나는 일주일에 두어 번 간식거리를 준비해서 그들과 함께 나누어 먹곤 했다.

철을 따라 다른 작업장으로 이동하는 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핸드크림을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선물을 받고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우리말로 내게 말한다.

"너는 우리의 친구야!"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며 이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이젠 태국 사람들도 영악해져서 뺀질뺀질 요령을 부린다면서 베트남 노동자들을 써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현장에서 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이들도 사람이고, 어려운 것은 어려운 것이며,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고, 또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 공장,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그렇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마음가짐과 자세, 철학을 가진 공장이 되었으면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잠시 옛 생각을 하니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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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하고 있는 브런치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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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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