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상
진풍이가 심심한지 놀아달라고 짖어댄다.
요즘 날씨가 추워 안에만 옹송그리고 있었는데, 바람도 좀 쐴 겸 진풍이 옆에 앉아 '쓰담쓰담', '토닥토닥'거리며 햇볕을 쬐고 있었다.
이 녀석은 꼭 내 앞쪽에 앉는데, 엉덩이를 항상 내게 들이밀고 앞을 보면서 앉는다.
그러면서 나를 보고 싶으면 꼭 고개를 뒤로 젖혀 쳐다본다.
맞은편 비탈에는 토끼장이 있는데,
그 안에서 쥐 한 마리가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인다.
'뭐야? 쥐네? 근데 토끼집에서 뭐 하는 거야?'
가까이 가보니 콩 찌꺼기들이 보인다.
엄마가 메주를 쑤고 남은 것들을 모아 놓았다가 토끼에게 먹이로 주셨나 보다.
이놈이 그걸 빼돌리려고 그렇게 바빴던 것이다!
조금 있으니 토끼가 깡충거리며 나온다.
먹성 좋은 놈 답게 먹을 게 보이니 우적우적 씹어먹기 시작한다.
쥐가 또다시 나타난다.
그런데 우물쭈물, 왔다 갔다, 어찌할 바를 모른다.
가져갈 것은 많은데, 그만 토끼가 나타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어쩔 줄 모르고 한참을 왔다 갔다 하더니, 드디어 이놈, 용기를 내어본다.
재빠르게 다가와 몰래 한 덩이를 훔쳐내어 도주한다.
용기가 생긴 걸까?
이번에는 아예 옆에서 같이 먹고 앉아있다.
그렇게 둘이 사이좋게(?) 앉아서 먹는 걸 보면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원래 토끼장에는 두 마리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암놈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새끼를 낳은 것 같다고 하시는데,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토끼장에는 수컷과 암컷 둘이 있는데, 한 번도 새끼를 낳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한 달이 넘도록 보이지 않는 걸 보니, 굴 속에서 죽은 것이다.
병이 들었을 수도 있고, 자는 동안 쥐가 갉아먹어 죽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둘이 같이 사이좋게 앉아 밥을 먹다니...
아마 토끼는 저 조그만 쥐가 자기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면 지금까지 살아남았는데, '쥐 따위야!',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을 읽다가, 문득 어제의 일이 생각난 것이다.
무화과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는다고 해서 놀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계가 그 생산력에 적합한 여러 가지 사물을 생산했다고 해서 놀라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주 1).
토끼는 예쁘고, 사랑스럽고, 보호해주어야 할 동물이고, 쥐는 징그럽고, 교활하고, 해롭기만 한 존재일까?
어쩌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쥐와 나란히 앉아 겸상을 하고 있는 토끼의 모습에서 자연의 신비함이 느껴진다.
삶(밥상)과 죽음이 한 자리에 같이 앉아 있다!
자연이 적합하게 생산한 것을 두고 내가 옳으니 그르니 판단할 수 있을까?
'그저 그러하도록' 나도 순응하면서 살아야겠다!
사물은 그 자체로서는 해로운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다. 우리가 약하고 비굴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위대하고 고매한 일들을 판단하려면 그만큼 위대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것인 악덕을 그런 일에 전가시킨다. 꼿꼿한 삿대는 물속에서 굽어 보인다. 사물은 본다는 것보다도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이다(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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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M.아우렐리우스 / 키케로, <아울렐리우스 명상록/키케로 인생론>, 2018, 동서문화사
주 2) 몽테뉴,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 2005,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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