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하고 너, 이리 나와!"
구령대에서 '매스 게임'을 지도하던 선생님이 나와 친구를 불러내신다.
음악에 맞춰 '군무'를 춰야 하는데, 나와 친구는 쇠꼬챙이 마냥 가만히 서 있었다.
왜 그랬냐고?
나는 원래 춤을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그것보다는 일종의 종교적인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 문화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
보수적인 성향의 종교적 가르침에 길들여졌던 나와 친구는, 신나게 흘러나오는 음악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율동도 거부한 채, 불만 섞인 표정으로 서 있었다.
결국 나와 친구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생님께 혼이 나가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수치스럽게 춤을 춰야 했다.
오래전 이야기다.
지금은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되지만, 그때는 신앙을 시험받는 심판대에 올려진 양 심각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팝송이 그때 흘러나왔던 노래다.
그룹 'JOY'의 'Touch By Touch'.
스마트폰과 카오디오를 블루투스로 연결하여 빵빵한 사운드로 듣고 있자면, 그때의 기억이 함께 소환되면서 그립고, 아련하고, 서글픈 감정, 그리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마치 비눗방울처럼 피어오른다.
지금도 그때 학교 건물과 구령대, 운동장과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많은 학생들, 그리고 뜨거운 태양볕 아래에서 가을 운동회를 준비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틀 전에 조카 녀석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바로 내가 다녔던 그 초등학교에서.
새로 지어진 체육관 건물에서 열리는 졸업식에는, 졸업생이 20여 명 앉아 있었고, 졸업생들 뒤로는 그 보다 조금 더 많은 재학생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참 조촐한 졸업식이었다.
그래도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졸업식이니 모두들 그 감격이 남달랐던 모양이다.
6학년은 20명 정도지만, 학년이 내려갈수록 아이들의 숫자도 점점 감소한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현장에 와서 보니 심각성이 피부로 다가온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예전의 풍성하고 정이 넘쳤던 분위기를 다시는 느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만의 편견인지도 모르겠지만.
졸업식 장면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가을 운동회는 내게 너무나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부모님과 마을 주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준비하던 '매스 게임' 만큼은 정말 고역이었다.
단체로 연습하는 퍼포먼스인 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 때문에 뜨거운 여름부터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춤도 춰야 했으니 준비하는 매일이 고역이었다.
운동회 날짜가 다가오면, 입장부터 퇴장할 때까지 실전처럼 연습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가을 운동회날의 설레는 아침, 대목 장사를 위해 주변의 상인들이 모여들고, 재미난 구경거리가 없던 시골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운동회는 온 동네의 커다란 축제였다.
그날의 주인공은 우리들이었고,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장난감과 맛있는 먹거리들은, 그동안 운동회 준비를 위해 고생했던 시간을 보상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운동장 주위를 빙 둘러 감싸고 있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시원한 그늘에 자리를 깔고 앉아, 우리는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다음 순서를 기다리면서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맛있는 김밥과 간식을 먹고, 새로 구입한 장난감을 들고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다녔다.
이제는 다시 올 수 없는 시간들...
조카의 졸업식을 보면서 눈가에 촉촉이 이슬이 맺힌다.
화장실에 앉아 똥을 닦아달라면서 아빠를 부르던 녀석이,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감격 때문일까?
아니면 어느샌가 속절없이 지나버린 무심한 시간 때문일까?
문득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돈이 없어 초등학교를 중퇴해야 했던 엄마.
매일 학교 담장을 보며 그 너머에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는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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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하고 있는 브런치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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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