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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Jan 03. 2024

그가 우물에 빠진 날

요즘 세상에 대한 단상

약 1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섬마을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예전에는 세 개 정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짠물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메워 버리고,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우물 하나만 남겨 두었다고 한다.

먹을 수 있다고 하니, 정수기 물통을 하나 들고 가서 물을 담아 왔다.

밥솥에 밥을 안쳐 놓고 느긋하게 커피를 한 잔 타면서 TV를 보았다.


'그런데 커피가 왜 이래~?'

'왜 프림이 섞이지 않고 허옇게 위에 다 뜨지?'

그런데 커피만 이상한 것이 아니다.

다 된 밥을 퍼서 먹기 시작하는데,

이야~, 간이 다 돼있다!!!

짭조름하게 간이 잘 된 밥을 먹으니, 반찬이 필요 없겠다.


나의 섬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살던 조그만 섬에는 약 10여 가구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펜션 사업을 하는 분들이 소수 들어와 마을 건너편에 거주하고 있었다.

마을에 물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펜션 사업자들이 들어오면서부터다.

여행객들이 섬에 찾아오면서 지하수가 점점 빠른 속도로 고갈되었고, 물은 점점 짜게 변했다.

그 문제로 원주민들과 펜션 사업자들 간에 다툼이 생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같은 섬에서 살게 되었으니 언제까지 싸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까운 섬으로 물을 받으러 가거나, 육지로 나와 물을 담아가곤 했다.


섬 생활은 무척이나 힘들다.

고된 바닷일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나면, 사람들은 예외 없이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집집마다 갖춰진 노래방 기계 앞에 앉아 노래를 부르면서 하루의 시름을 달래곤 했다.

그래서 여기는 알콜 중독자들이 많다.


마을에 커다란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

결혼에 몇 번 실패하고, 다시 섬에 들어와 부모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삶을 비관하면서 매일 술만 마셔댔다.

그런데 술만 마시면 소리를 지르고 싸움만 일삼으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싫어했다.


한 번은 저녁에 마을에 내려왔는데, 우물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보통 우물은 사용하지 않을 때는 뚜껑으로 덮어 놓는데,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하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싶어 다가가 뚜껑을 열어 보았는데,

'헉~! 사람이 빠져있다!!'

그래도 살아보려고 우물 벽을 손과 발로 지탱하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어두컴컴하니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뚜껑을 덮어 버린 것이다.

다급하게 이웃에게 알리니 사람들이 모여들고, 곧 구조 밧줄을 만들어 그를 건져 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 사람이었다.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구조 밧줄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몸통에 감고 다리에 걸라고 사람들이 소리소리 지르는데, 몸을 제대로 가누지를 못한다.

그렇게 30분 넘게 사투를 벌인 끝에 간신히 우물에서 구조해 내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참...

죽을 사람을 살려주기는 했는데, 그다지 마뜩지 않은가 보다.

다들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신 그를 욕하고, 혀를 끌끌 차면서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간다.


그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물으신다면,

그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어느 날 부고가 들려왔다.

화장실에서 쓰러진 그가 발견되었다고.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셨는지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녹아내린 것이다.




마약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한 지 꽤 되었다.

어느 날 영상을 보다, 마약에 중독되는 것이 '맥락'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와 어디에서, 왜, 어떻게...

그런데,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은 호기심에 이끌려 중독이 되었다 하더라도, 회복할 가능성이 비교적 많다고 한다.

왜냐하면, 건전한 인간관계 속에서 경험했던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 마약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 속에 불행하고 우울한 것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마약 없이도 살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찾기 어려워,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비난과 욕만 하면서 사람대접을 해주지 않아, 그의 정신이 더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다.

알콜 중독이라면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으면 어땠을까?

다만 몇 분이라도 따뜻하게 대해 주면서 용기를 주었다면 어땠을까?

점점 힘겨워지는 요즘 세상을 보면서, 문득 그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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