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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Jan 07. 2024

작은 것에 감사할 이유

시골개 이야기 4

진풍이는 꼭 오줌을 싼 다음에 똥을 싼다.

그런데 오줌만 지, 똥까지 싸려고 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보이는 아주 미묘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이다.


1. 한쪽 뒷다리를 높이 들어 오줌을 싼 후 직선 아래로 내린다.

2. 한쪽 뒷다리를 들고 오줌을 싼 후, 마치 허들을 넘는 것처럼 곡선으로 내린다.


1번 동작은 오줌만 싸는 경우,

2번 동작은 오줌에서 똥으로 이어지는 연결 동작이다.

이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친 반복 훈련이 필요하다.


연결 동작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아한 곡선을 그리면서 뒷다리가 땅에 안착, 그동안에 엉덩이는 대각선으로 하강하면서 등은 활처럼 굽고, 마침내 똥을 싸기 위한 완벽한 자세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때 땅이 울퉁불퉁할 경우에는 다리를 한 번 다시 짚어, 안정된 지점에 착지한 후 자세를 잡는 치밀함도 보인다.


주로 길가에 싸는데, 요즘에는 수풀이 많은 곳에 싸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진풍이에게는 예술가의 기질이 있는 것 같다.

놀랍게도 이 녀석은 돌 위에 똥을 가지런히 쌓아놓는 기술을 선보인다.

비스듬한 옆면에 똥을 싸고, 마찰력을 이용하여 똥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묘기도 연출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절대적인 기술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조그만 꽃나무 혹은 잡초 위에 똥을 꽂아 넣어, 있는 듯 없는 듯 위장하는 귀신같은 솜씨다.

그럴 때면 진풍이가 창조한 예술작품을 넋을 놓고 쳐다보곤 한다.


그런데 한동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왜 오줌과 똥을 동시에 싸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질문하고 갈급하게 답을 찾았던 어느 날, 드디어 나는 깨닫게 되었다.

비밀은 바로 '각도'에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진풍이는 똥을 싸기 위해서 등을 활처럼 구부린다.

그러면 오줌이 나올 출구는 어디쯤에 위치하게 될까?

이 녀석이 수컷이라는 것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그렇다!!

똥을 싸면서 오줌을 동시에 누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출구의 방향이 정확하게 복부를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달은 순간, 나는 진풍이를 향한 안타까움에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 오줌과 똥을 동시에 싸는 쾌감의 극치, 그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없는 가엾은 존재라니~!!


작은 것에 감사하자!

내가 누리는 작은 즐거움조차 허락되지 않은 존재들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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