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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Jan 14. 2024

좀 까칠한 내 친구에게~

시골개 이야기 5

진풍아~


네가 처음 나에게 오던 날을 기억해. 똥똥한 몸에 하얀 털 보송보송, 귀여운 얼굴에 꼼지락대는 발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그런데 너는 똥개가 아니라고 하더라? 무려 진돗개와 풍산개, 두 왕족 사이에서 태어난 귀한 몸이더라고. 그런데 어쩌냐. 우리 집에는 '반려견'이라는 개념이 없거든. 어쩔 수 없이 너를 개줄에 묶어 똥개와 같이 살게 해야 했어. 그런데 너는 개줄에 묶이면서도 한 번 싫다는 기색을 안 하더라. 그때 너의 심성이 참 착하고 순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


똥개와 같이 크면서 밥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아마 너와 같이 살게 된 녀석도 많이 힘들었을 거야. 왜냐면, 네가 너무 많이 먹었거든. 밥을 따로 줘도 니 거 다 먹고 뺏어 먹으려고 했으니, 걔가 얼마나 화가 났겠니? 덩치도 네가 훨씬 크니 겁도 났을 거야. 너희 둘이 싸울 때마다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단다. 결국 친구가 먼저 병에 걸려 죽고 말았지. 아무리 많이 싸웠어도 친구가 먼저 죽으니 너도 좀 슬펐지? 좀 잘 지내지 그랬어, 후회하지 않게.


한 동안 내가 너와 떨어져 지냈을 때 많이 심심했지?

그래서 내가 다시 집에 왔나 봐. 진풍이가 보고 싶어서. 그 덕분에 너와 산책까지 같이 다니게 됐으니, 참 잘 생각한 거 같아. 너도 매일 산책 나가니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더라. 얼마나 달리고 싶었는지 무더운 여름날에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더라고. 그날 기억하니? 네가 더위를 먹어서 몸에 가벼운 경련을 일으키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날. 나도 너무 당황해서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더라고. 넌 개야! 털 많은 개! 사람도 그 더위에는 너처럼 안 달려. 이제는 매일 산책 나가니 천천히 좀 다니자고. 또 그러면 안 데리고 나간다. 진짜~


피부병 걸린 진풍이 진료받으러 가던 날.

그리고 말이야, 너!

사냥개의 핏줄인 건 알겠는데, 뭔가를 추적하는 것처럼 냄새를 맡다가 몰래 똥 먹은 적 있지? 나도 다 알고 있거든? 그리고 똥 먹고 내 얼굴 핥으려고 하지 마. 네 입에서 똥 냄새나거든? 그렇게 아무 데나 코를 들이대면서 냄새 맡고, 음식물 쓰레기니 똥이니 주워 먹으니 피부병이 생기지. 피부병 걸린 콧등 나한테 들이밀면서 비벼대지 말길 바래. 나도 피부병 옮으면 어떻게 하냐? 너는 진돗개와 풍산개, 두 왕족의 고결한 혈통인 걸 꼭 기억하기 바래. 너는 똥개가 아니라고!!


그리고 너무 도도하게 굴지 마.

너는 사회성이 너무 부족해. 너 좋다고 따라오는 애들이 얼마나 많냐? 꼬맹이들도 너 좋다고 오는데, 너는 왜 그렇게 까칠하게 구니?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어대면서 오는데, 네가 짖는 바람에 기겁해서 도망치잖아. 발라당 고꾸라져 넘어지면서 외마디 비병을 지르는 애들이 불쌍하지도 않니? 그리고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분들이 자꾸 나한테 물어본단 말이야. 네가 몇 살이냐고. 여자친구 만들어 주고 싶다는 거지. 그럼 내가 얼마나 뿌듯한데. 네가 그만큼 잘 생기고 멋있다는 말이니까. 이제 그만 좀 까칠하게 굴자고. 그런다고 여자 개가 너를 매력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그래도 너한테 너무 고마운 게 있어.

어느 날엔가, 내가 개줄을 놓쳤을 때 네가 나를 떼어 놓고 가고 싶은데로 막 달려가더라고. 솔직히 그날 난 무척 서운했다. 그리고 삐쳐서 '니 맘대로 해'라고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 네가 작은 개였으면 아마 그렇게 토라져서 돌아와 버렸을 거야. 그런데 이제는 내가 싫어하는 것을 네가 눈치채고 하지 않더라고. 그리고 내가 미끄러져 넘어졌을 때, 나한테 달려와서 괜찮은지 확인하는 걸 보고 너무 감동했었어~ ㅠㅠ.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나를 위해 싸울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드는 거야.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날은.


앞으로도 우리 함께 산책하면서 행복하게 지내자, 진풍아~

그리고 다시 한번 부탁하지만, 엄마가 맛있는 사골 국물에 고구마 말아주니까 몰래 똥은 먹지 말고~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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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 목 - <문장의 힘!>

⁕ 화, 금 - <거장에게 듣는 지혜>

⁕ 수, 일 - <사소한 일상은 인생의 최종손익결산>


수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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