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우리 집 마늘밭 옆에 보리밭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초등학교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이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고, 우물 옆으로 이어지는 샛길을 따라가면 소위 말하는 '신작로'와 시내에 이를 수 있었다.
지금은 예전 마늘밭 있던 곳으로 도로가 지나가고,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는 비교적 번화한 곳으로 바뀌었다. 부모님은 보상을 받은 돈으로 작은 건물을 짓고 세를 주기 시작하셨다. 그동안 겪었던 우여곡절이 상당하지만, 지금은 좋은 세입자들을 만나 서로 선물도 주고받으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식당을 하는 아주머니께서 고맙다면서 청계 병아리를 가져오셨다. 세 번에 걸쳐 가져오신 병아리가 모두 16마리나 되었다. 그중에 한 마리가 죽고, 15마리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크고 보니 수탉이 무려 5마리나 된다. 쓸모없는(?) 수탉은 한 마리만 남기고 나누어 주었고, 지금은 11마리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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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들이 사료를 어지간히 많이 먹는다. 아침과 저녁에 두 번 주지만, 먹는 양이 많아서 사료가 쑥쑥 줄어든다. 그렇게 몇 달 사료만 축내더니 드디어 이 녀석들이 알을 낳기 시작한다. 옅은 하늘색의 '청계란'. 어떤 때는 3~4개, 많으면 7개를 낳는다. 덕분에 우리는 매일 계란찜과 프라이를 먹는다. 노른자 색깔이 진하고 탱글탱글하며 전체적으로 단맛이 난다.
알을 낳으면 특유의 소리로 울어대는데, 가 보면 알이 서너 개 들어있다. 닭장 문을 열고 들어가 알을 꺼내가도 이 녀석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알을 내어준다. 지금 수탉은 예전 수탉처럼 성질이 고약한 녀석이 아니라서 까다롭게 굴지도 않는다. 그렇게 꺼내 온 싱싱한 달걀은 그날 저녁 식탁에 오르거나, 다음 날 반찬거리로 나온다. 사료만 축내더니 이제야 밥값을 제대로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소리를 내는 것은 똑같은데 닭은 '운다'로 표현하고, 개는 '짖는다'라고 표현을 한다. 국립국어원 표준어대사전을 찾아보니, '운다'는 말은 짐승이나 벌레, 바람 따위가 소리를 낸다는 의미가 있다. 개도 울고 닭도 우는 것이다. '짖다'는 특별히 개나 까마귀나 까치가 우는 것을 말한단다. 그래서 개는 짖는 것이지만, 닭은 짖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단어로 '우짖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 말은 닭과 개 모두에게 사용 가능하고, '울며 부르짖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닭도 개도 우짖지 아니하는 첩첩 심산유곡'이라는 표현처럼 사용이 가능하다(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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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궁금해서 찾아본 것인데, 말이란 게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닭이 우는 소리는 사람에게 유익한 달걀을 가져가라는 반가운 소리다. 물론 아침을 깨우는 수탉의 소리도 있다. 그런데 우리 집 진풍이가 우짖는 데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낯선 사람을 위협해서 집을 지키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주인에게 놀자는(주로 산책) 의미다. 그런데 산책을 가자고 할 때는 한 가지 숨겨진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똥 싸야 되니까 빨리 나가자는 의미다. 요즘은 비 오는 날에도 짖어대는데 참 곤란하다. 그렇게 한참 지나면 아니나 다를까, 개집 옆에 똥 한 바가지가 덩그러니 쌓여있는 걸 볼 수 있다.
어떤 애는 먹을거리를 주면서 울어대는데, 어떤 놈은 산책시키라고, 똥 싸러 가자고 울어댄다. '이거 너무 손해 보는 거 아니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진풍이의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할 것 같다. "알을 못 낳아서 미안하다. 집 지키는 게 달걀만 못하겠지만, 어떻게 유익한 것으로만 존재의 경중을 판단하냐?"라고 말이다.
인간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될 만한 사람, 유익한 사람만 가까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 존재만 가까이하고 애정을 줄 수가 있나? 그저 존재가 사랑스러우니 사랑하는 거지. 밀란 쿤데라는 '인간의 참된 선의는 아무런 힘도 지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순수하고 자유롭게 베풀어질 수 있다(주 2).'라고 하였고, 새뮤얼 존스도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그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드러난다(주 3).'라고 하였다. 참사람의 가치는 그저 사랑을 주는 것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