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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Jan 24. 2024

그놈의 '잠'이 뭐길래!

잠에 얽힌 이야기들

대학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우리 학교는 기숙사 시설이 그리 좋지 않았다. 다만 좋은 게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통금 시간이 없고 매우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다만 여사에는 통금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학교 기숙사에는 전통이 하나 생기게 되었다. '사랑의 바구니'래나 뭐래나. 밤늦게 야식을 먹고 싶은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에게 먹을 것을 좀 사달라고 부탁한다. 남학생들이 간식을 사가지고 와서 밖에서 부르면, 기다리던 여학생들은 창밖으로 바구니를 줄에 매달아 내린다. 그러면 바구니에 먹을거리를 푸짐하게 담아 올려 보내는 것이다.


'빈대'들도 많았다. 한 방에 정원이 4명인데, 방마다 빌붙어 사는 학우가 꼭 있었다. 심하게는 7명이 사는 방도 있었다. 야전병원 이층 침대 같은 것이 두 개, 책상 4개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숙사 방에 7명이 자려면, 방바닥까지 모두 차서 빈 공간이 없을 정도가 된다. 1층에는 방장과 부방장이, 2층에는 후배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잔다.


딱 이렇게 생겼다. 여기에 2층을 올렸다고 보면 된다.

내가 방장일 때도 친한 친구들이 놀러 오면 재워주는 일이 많았는데, 한 번은 친구 하나가 이층에서 자겠다고 기어올라가는 것이었다. 이 친구가 잘 때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편인데, 그래도 난간이 있으니 괜찮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자다가 큰 소리가 나서 일어나 보니, 이 친구가 이층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자고 있던 후배들까지 다 소리를 듣고 깰 정도였으니 꽤나 아팠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이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대로 잠을 자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도 동기들이 모이면 항상 그때 얘기를 하면서 배가 터져라 웃곤 한다.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잠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알렉산더 대왕 /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얽힌 이야기부터 볼까?

그가 페르시아와의 커다란 일전을 앞두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싸움에 나갈 시간이 다 되어도 그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당황한 파르메니온이 방에 들어가 그를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커다란 소리로 다시 부르기를 두세 번 하자, 그때서야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운명의 날인데도 얼마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아침 늦게까지 단잠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주 1).


오토 황제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자.

오토 황제가 자살하려고 결심한 날 밤, 집안일을 정리해 놓고, 금전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고, 칼날도 잘 갈아 놓았다. 다만 친구들이 안전하게 물러간 것을 알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만 아주 깊이 잠이 들어 버렸다. 코 고는 소리가 하인들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자살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 이렇게 단잠에 빠져버릴 수 있다니.


소 카토의 죽음 / 출처 : 네이버 이비지

소(小) 카토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한데, 그도 자살을 결심하고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다. 원로원 의원들을 다 물리고 그들이 우티카 항구에서 멀리 떠났다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너무나 깊이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그의 숨소리가 이웃 방에까지 들렸다고 한다. 항구로 보낸 사자가 돌아와서 그를 깨우면서, 원로원 의원들이 폭풍 때문에 돛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자, 그는 또 다른 사람을 보내 놓고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서, 전령이 돌아올 때까지 또 깊이 잠들어 버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들은 몽테뉴의 수상록에 들어있는데, 몽테뉴는 위대한 인물들은 어떤 커다란 일을 앞두고도 아주 침착한 태도를 취하고 잠자는 시간도 줄이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마음이 이런 사건들을 초월해서, 평상시 사건들과 똑같이 조금도 머리에 담아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다(주 2).'


부럽긴 하다.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과 죽음을 앞두고도 단잠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아마 하루동안 자기의 할 일을 최선을 다해 마쳐놓고 나머지는 인간 너머의 무언가에게 맡겨놓는, 초연한 마음자세, 혹은 초월한 마음가짐이 그런 단잠을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살면서 해야 할 일을 다 마쳐놓고 마지막 남은 일이 죽는 것이라면, 그 또한 달갑게 받아들이는 '정신'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본다.


요즘 잠 때문에 계속 고민이 많은데, 어쩌면 나의 정신이 미천하고 빈약하여 그런 것은 아닌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이층 침대에서 자다가 떨어진 내 친구의 정신도 혹시?

'에이~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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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도 나오는 이 이야기는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다.

주 2) 몽테뉴,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2005,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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