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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Jan 10. 2024

기억은 서로 다르게 변주된다

새해 동기 모임

"야! 새해도 됐는데 한 번 봐야지?"


개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친구가 단톡방에 글을 올리며 얼굴 한 번 보자고 한다. 우리는 서울, 경기, 강원, 충청도에 흩어져 사는데, 1년에 한 번 정도 정기모임을 갖는다.


같은 대학에 다녔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전공을 살린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지독히 방황하면서 주변을 맴돌았던 아웃사이더였다. 그래서 모이면 하는 얘기가 PC방에서 '스타(스타크래프트)' 하던 얘기, '포트리스' 하던 얘기, 당구치던 얘기다. 그러던 친구들이 제 밥그릇 챙기고 사는 걸 보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역, 오후 5시.'

친구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얼마나 됐지? 15년? 20년? 전과 다르게 얼마나 살이 쪘는지, 얼굴이 호빵맨이나 마인부우가 연상될 만큼 통통하다. 그래도 여유 있는 표정을 보니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가볍게 안부를 묻고, 우리는 식당을 찾아 먼저 밥을 먹기로 했다. 서울에 사는 친구가 우리 중에는 가장 잘 나가는데, 만날 때마다 모든 비용을 자기가 지불한다. 골목에 있는 맛집을 찾아 구석에 자리를 잡고, 우리는 왁자지껄 지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모임에는 특별한 손님이 한 명 더 참여하게 되었다. 아직 결혼하지 못한 친구 하나가 드디어 결혼한다며,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기로 한 것이다. 무척이나 눈이 높은 친구였는데, 무엇에 씌었는지 홀라당 넘어가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친구도 일이 이렇게 될지 전혀 몰랐다고 하면서, 마치 '도'를 깨달은 사람 마냥 일장 훈계를 늘어놓는다. 물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나한테만.

'인연이란 게 있기는 한 건가?'



출처 : pixabay

장소를 까페로 옮겨 대화를 나누는데, 기억이 서로 맞지 않아 퍼즐을 맞추듯 기억의 조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OO이 결혼식에 누구누구 갔었지?"

"그때는 나하고, OO, OO가 갔었지."

"아닌데, 나도 갔었는데. 그때 우리 같이 가서 축가 했었잖아."

"그랬나? 그런데 내 결혼식에는 왜 안 왔어?"

"뭔 소리? 너 결혼했을 때도 갔었잖아. 결혼식 끝나자마자 영국 간다고 해서 공항까지 같이 간 거 기억 안 나냐?"

"그랬었나? 공항에 왔었다고?"

친구 하나가 거든다.

"어, 맞어. 그때 기수하고 나하고 같이 공항에서 너 배웅해 줬지."


벌써 20년 전 정도 지났으니, 다들 기억이 가물가물한가 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의 결혼식에 내가 참여했고, 게다가 부조금까지 받아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참석했던 건가?

"그때 기수하고 나하고 같이 부조금을 받았는데, 한자를 모른다길래 내가 알려줬었지. 하하하"

친구는 그때를 떠올리면서 뿌듯해한다.

그리고 한 친구도 거든다.

"맞어. 그때 기수하고 OO하고 같이 부조금 받았어. 내가 확실히 기억하는 게, 그때 OO이 구두가 낡아서 내 구두를 벗어줬었거든."

그 말을 들었을 때, 퍼뜩 그 친구의 결혼식에 내가 참여했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은 사실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과거의 회상(기억)에 대한 회상(기억)이다(주).'




우리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다.

같은 때, 같은 장소, 같은 상황을 공유했다 하더라도, 누구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누구는 특별하지 않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사건인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결코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또는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각인되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의 상황을 마주할 때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거기에 감정을 개입시키고 판단한다.

김치찌개 하나를 먹더라도, 사랑하는 연인과 마주 앉아 먹을 때와 불편한 상사를 앞에 두고 먹는 맛은 천지차이다.

똑같은 김치찌개인데 전자는 맛집 김치찌개로, 후자는 최악의 김치찌개로 기억되는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나를 너무 믿지 말자.

내 생각을 너무 고집하지 말자.

언제든 내 생각이 잘못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너그럽게 타인의 의견과 생각을 포용하고, 공통의 관심사를 찾고 합의점을 찾아내자.


무궁화호를 타고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KTX처럼 빠르게만 살지 말고, 무궁화호처럼 천천히 달리면서 넉넉한 마음을 갖고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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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롭 무어, <결단>, 2019,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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