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는 이 이야기를 오스카 와일드의 해석을 빌려 자신만의 개성으로 새롭게 창조해 냅니다(주 1).
나르키소스가 죽었을 때 숲의 요정 오레이아스들이 호숫가에 찾아와, 나르키소스를 애도하며 눈물을 흘리는 호수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슬퍼할만하네요. 사실 그대야말로 그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이 말은 들은 호수는 요정들에게 반문합니다.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
요정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날마다 나르키소스를 마주한 호수야말로 그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서 누구보다 잘 보았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그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르키소스는 날마다 그대의 물결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잖아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호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엽니다.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젠 그럴 수 없잖아요.”
이런 세상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를 보면서도 그가 아름다운 것을 알지 못하다니!
게다가 가장 아름답다는 존재를 거울로 삼아 오히려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다니!
많은 분들이 아이돌 그룹을 좋아합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라서 걸그룹을 좋아합니다. 1세대 그룹인 S.E.S와 핑클부터 3세대 '트와이스'까지, 하지만 4세대 아이돌은 '뉴진스'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여하튼,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누구는 삶의 목적을 그곳에 두었다고 생각될 만큼 엄청난 열정을 쏟아붓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그들의 아름다움을 사모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사람을 소유하고 싶다.'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정 안된다면, 그런 사람 곁에라도 있고 싶다.'
'아니, 그저 옆에서 바라만 봐도 행복하다.'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눈은 밖에 있는 아름다움만 찾을 뿐, 안에 있는 아름다움은 보지 못합니다. 파울로 코엘료가 말하는 것은, 나 아닌 다른 것의 아름다움은 볼 줄 알지만, 정작 자신의 아름다움은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요즘은 '코칭'이라는 것에 빠져 있습니다.
상담이 내담자의 과거에 관심을 갖고, 내담자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과거의 경험에서 찾아내어 치유하는 전문 분야라면,
코칭은 피코치(코칭을 받는 대상자)의 미래에 관심을 갖고, 성장과 목표에 초점을 맞춥니다.
상담이 치유에 목적을 둔다면, 코칭은 피코치의 잠재력을 끌어내는데 목표를 두는 것입니다.
코칭이 매력적인 이유는, 피코치로 하여금 자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하는 눈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사느라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젊은 날의 꿈은 이상으로 남겨둔 채, 현실에 순응하여 남들과 똑같이 사는 삶을 철든 것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
은퇴한 뒤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열심히 일해왔지만, 정작 은퇴하고 난 뒤엔 이미 다 시들어 버린 자신의 인생을 허탈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말로 다 못할 상실감을 경험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늘 열등감과 자괴감에 빠져 사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은 밖을 보게 되어 있지만, 비단 바깥 것들만 보이는 것은 아닐 겁니다. 보이는 시선 밖으로 나를 옮기면, '시력'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그 너머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마음의' 눈으로 보는 '관조'의 세계입니다.
그렇게 마음의 눈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을 왜곡되게 인식하지 않고 올바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면의 강인함을 갖춘 사람이라야 자신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세상에 투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주 2). 내면의 결핍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일 뿐, 외부의 것으로 내면의 결핍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내면의 충만함은 오직 자신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 속에 있는 광활한 우주를 발견할 때 채워질 수 있습니다.
외부에만 머물렀던 시선, 밖에만 맞춰졌던 초점을 안으로 들이고, 자신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