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누구에게 속한 것인가?

by 긴기다림

대표적인 생활습관병인 고혈압과 당뇨를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어 많은 책을 읽고 생각하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고혈압에는 전고혈압의 단계가 있습니다. 당뇨에는 내당능장애가 있습니다. 전고혈압과 내당능장애는 고혈압과 당뇨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자고 만든 단계입니다. 발병하고 그때부터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발병 전 단계부터 대응하면 치료하는데 효과적이라는 논리입니다.

발병 후 치료하는 것보다 예방이 효과적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당연한 대응입니다. 전 고혈압은 통상적으로 이완기 혈압 80∼89, 수축기 혈압 120∼139를 말합니다. 내당능장애는 당화혈색소 5.8∼6.4를 말합니다. 이때부터 고혈압과 당뇨를 관리하자는 취지입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기에 치료에 좀 더 효과적이라는 논리입니다.


타당한 논리인데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생활습관병의 기준 수치는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생활습관병의 수치가 낮아지면 생활습관병에 해당되는 사람의 숫자는 늘어납니다. 병을 가지고 있기에 치료의 대상이고 치료를 위해 검진과 처방을 받게 됩니다.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의료비가 증가하는 것에 비례해서 생활습관병 환자수가 줄어든다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모 통계 수치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고혈압 환자 수 14.1%(연평균 3.4%), 진료비 23.5%(연평균 5.4%) 증가했습니다. 당뇨 환자 수 18.6%(연평균 4.4%) 증가할 때 진료비 25.7%(연평균 5.9%) 증가했습니다. 통계에 따라 수치가 다를 수 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고혈압, 당뇨 환자는 줄지 않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선제 대응을 해도 사람들이 건강에 좋지 않은 생활을 하기에 유병률이 높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한 번쯤 깊게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생활습관병의 기준 수치를 낮추는 것이 천문학적인 돈과 연결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지만 그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질병의 수치가 절대적으로 병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점인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며칠 전 TV에서 아내가 남편의 공복 혈당을 체크하면서 매우 심란한 표정을 짓는 것을 봤습니다. 수치는 124였습니다. 공복혈당 수치가 100 이하로 유지돼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라 124의 수치는 남편 건강의 적신호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건강의 적신호를 건강을 지키려는 동력으로 사용한다면 좋겠지만 필요치 않은 진료와 처방을 선택하게 하는 지표로 삼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선제적 대응이라는 미명아래 치료할 수 있는 루트를 하나로 좁히는 것이 맞는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당연히 깊은 공부와 건강을 위한 실천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의사와 병원이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그것 외에 질병 치유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미국도, 우리나라도 의사라는 직업군에 엘리트 집단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병과 치료에 관한 그들의 말이 전가의 보도일 수는 없습니다. 인류는 양의학에 있기 전부터 생명을 살리는 다양한 방법을 축적해 왔습니다. 양의학이 과학적이라는 미명아래 돈을 버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겠지만 그 이상까지 좌지우지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건강은 자신의 노력에 속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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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의 건강을 위하여 읽고, 생각하며, 실천함으로써 가정의 행복을 위한 근간을 튼튼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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