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다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정된 시간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나왔나 봅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여러 가지면 기준을 가지고 선택합니다. 자신의 이익이 기준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익에는 건강, 좋은 감정, 경제적 안정 등 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더 많은 이익이 되는 일을 우선합니다.
어제 연수 중에 한 분이 질문하십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자리가 있고 자신의 역량을 늘려야 하는 기회가 있을 때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하냐고 말씀하십니다. 한정된 시간이라 우선은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는 쪽에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추고 나서야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나누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자신의 성장이 남의 성장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면입니다. 두 가지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특정한 형식이 있기에 시간과 장소와 방법이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역량 개발은 이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입니다. 자신의 역량을 위한 시간과 장소와 방법은 탄력적입니다. 생각만 조금 바꾸면 어떤 형태로든 가능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병행할 수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도움 요청을 외면하면 나의 힘을 보탤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자신의 역량 개발은 후순위라 해도 언제든지 기회는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해결해 주는 과정은 지금 원하는 배움과 성장은 아닐지라도 나의 전인적인 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전인적 성장의 관점으로 보자면 어떤 것이 먼저이든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나의 성장을 통해 타인의 성장을 도모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타인의 성장을 통하여 나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생각을 열어 두어야 합니다.
기부와 봉사를 하는 사람도 하려는 사람도 많습니다. 기부와 봉사를 하고 싶지만, 아직 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시간을 낼 수 없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시간을 내서 특정 일을 하거나, 자신의 물건이나 돈을 기부합니다. 사느라 바쁘고 경제적으로 빠듯해서 봉사와 기부를 차일피일 미루기도 합니다. 기부와 봉사의 양과 종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기부와 봉사의 양은 적을지라도 그런 것이 모이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미루는 것은 본인에게는 큰 피해가 없지만 받는 사람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작은 것을 미루는 것 같지만 누군가에는 의미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기부와 봉사의 마음이 생겼다면 작은 것이라도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에게 출발한 사랑은 누군가에게로 가서 삶의 의지가 되고, 삶의 터전이 됩니다.
지금 100만 원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자신이 평소에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은행에 저축을 할 수도 있고, 삼성전자 주식이나 S&P500 ETF, 코인을 살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평소에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면 기분은 좋을 것입니다. 필요한 물건을 산다면 물건으로 해결할 수 있는 나의 문제가 해결되고 기분도 좋아질 것입니다. 100만 원으로 살 수 있는 자산을 사면 원금 외의 수입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떤 자산은 원금을 지키면서 작은 수익을, 어떤 자산은 원금 유지를 못할 수도 있지만 좀 더 많은 수익을 낼 수도 있습니다. 100만 원을 투자해서 100만 원의 수익을 낸다면 대박입니다. 만일 남편이나 아내가 평소에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사서 선물로 주면 두 사람의 기분은 좋아집니다. 배우자의 필요를 해결해 주고 좋은 기분은 두 사람에게 닿습니다. 기분이 좋아지면 기분 좋은 상태로 만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 굶는 사람,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쓴다면 100만 원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감당할 것입니다. 100만 원을 잃어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며칠간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우리 가족의 삶이 파탄이 나지는 않습니다. 그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져도 기분 나쁜 선에서 마무리되고 끝납니다. 1년이 지나면 흔적은 어디에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100만 원이 어디에 쓰이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다릅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닿거나, 물건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데 쓰인다면 쓰는 사람, 받는 사람 심지어 돈도 기분 좋지 않을까요.
자신의 삶이 먼저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당연하지만 자신만 보고 산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의 몫으로 남겨져야 할까요? 사람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살아가기 어렵다면 이는 사람의 책임 아닐까요. 우리가 만들어 놓은 지구별에서 아픈 사람,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사람, 먹고, 입고, 자는 일이 자유롭지 않은 사람은 그들의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자명해 보입니다. 사람으로서 동등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지구별의 문명과 체계를 만들어 놓은 조상과 우리의 책임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구별이 담아내지 못하는 사람을 포용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힘이 미약해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삶을 크게 양보하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작은 손길이 누군가를 행복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선한 영향력’이라고 하면 돈을 버는 수단을 포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을 조롱하면서 자신은 돈에 진심이며 1도 가식이 없다고 합니다. 자신의 이익이 먼저라는 말을 하면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산다고 강변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것을 포장하기 위해 또는 돈 버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선한 영향력’을 누군가가 어떻게 이야기하든 어떻게 사용하든 크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선한 영향력’을 폄하하는 말로 행복의 파장을 넓히려는 사람의 사기를 꺾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행복의 파장을 넓히려는 사람보다 행복으로 들어와야 하는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든다면 그냥 외면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선한 영향력’의 진정성을 부정하며 돈에 대한 진정성의 브랜드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혼자의 생각보다는 둘의 생각이 더 멀리 더 넓게 퍼집니다. 선한 생각과 행동들이 많은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의 길이와 넓이만큼 행복의 공간이 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