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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May 10. 2024

기우제

 벚꽃이 필 때까지는 봄이 좋았다. 생명이 움트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제각각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아스팔트에 꽃잎들이 떨어질 때면 아까워 미소 머금은 탄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벚꽃잎도 다 떨어진 지금은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은 심정이다. 저 산에서 노란 송홧가루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공기 중에 흩어지기 때문이다.

 오늘의 미세먼지 지수는 '매우 나쁨'이다. 통합대기환경지수(CAI)는 251~500까지의 수치를 ‘매우 나쁨’으로 보고 있는데 오늘의 수치는 305이다. 이는 '환자군 및 민감군에게 심각한 영향을 유발하고 일반인도 약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여기에 황사위기경보도 내려졌다. 몽골에서 발원한 황사가 바람을 타고 한국으로 오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화창한 날씨보다는 비를 바라는 일이 더 많아졌다. 오늘같이 황사와 꽃가루가 공기를 뒤덮는 날이나 건조해진 날씨로 산불이 발생하는 날, 한 여름에 기온이 정점을 찍은 날이 그렇다. 언론에서 기후위기와 자연재해 등을 거론하며 위기감을 조성하는 탓도 있겠지만, 대체로 비가 그치기를 바란다든지, 맑은 날이 언제 올지를 기다리는 일은 예전에 비해 드물어졌다.

 과거에도 비가 오기를 바랐을까? 어린 시절엔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랐던 때가 많았다. 비가 오면 소풍이나 운동회 같은 특별한 일정이 취소되기도 했고, 우산을 챙겨가지 못한 날에는 비를 쫄딱 맞고 집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비를 맞고 집에 오면 책가방에서 책을 꺼내 하나씩 닦고 말려야 했고, 필기한 노트는 글씨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울기도 했다. 또 부모님은 살던 집 1층에서 장사를 하셨는데 여름에 장마가 오면 어김없이 가게로 물이 들이쳤다. 아버지의 다급한 소리에 새벽에 깨어나 둥둥 떠다니는 물건들을 건져내고 아직 젖지 않은 물건들을 쉴 새 없이 2층으로 옮겼던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비가 새는 집도 많았고, 비로 도로나 다리가 쉽게 잠기고 무너졌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과학의 발달로 일기예보가 정확해진 탓에 날씨를 선택해 일정을 잡게 되고 비를 맞으며 집으로 뛰어올 일도 거의 없어졌다. 과거처럼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제때 비가 오기를 바라게 된 것이다. 인간은 미래를 내다볼 수가 없는데 날씨는 앞날을 내다볼 수 있어졌으니 미리 대비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간은 이제 날씨를 예측하고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날씨를 정하고, 정해진 날에 날씨가 맞춰지기를 원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미래에 날씨를 조작하는 단계까지 간다면 하늘을 보며 빌지도, 자연을 두려워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명의 이기도 농경 사회에 그 뿌리가 있다. 그리고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비가 중요했다. 단군 할아버지도 이 땅에 내려올 때 우사, 운사, 풍백을 데리고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농사를 짓다가 비가 오지 않아 논바닥이 갈라지면 지배자들은 하늘을 향해 기우제를 지냈다. 동물을 희생시키거나 묘를 파기도 했고, 굿도 하고, 악기 소리를 요란하게 내기도 했다. 외국에도 기우제는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중 제일 성공률이 높은 '인디언 기우제'다. 인디언인 호피족이 기우제를 지내면 확실히 비가 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디언의 기우제는 먹고사는 문제, 생명과도 직결된 이 문제를 서로 싸우지 않고 협심해서 슬기롭게 이겨나가자는 그들의 지혜다. 일기예보도 없던 시절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는 믿음으로 그 시간을 버텼던 인디언들을 생각한다면 황사와 꽃가루 정도는 가볍게 지나가는 자연현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나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소나무는 이맘때 바람에 꽃가루를 날려야 한다. 황사도 지력을 향상한다는 순기능이 있다고 한다. 자연 현상을 인간의 기준으로 평하기엔 생각해야 할 경우의 수가 너무도 많다. 그러니 인디언 기우제처럼 이 시기를 지혜롭게 극복해야 할 것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토요일 저녁에 비가 올 확률이 70%라고 한다. 나도 인디언처럼 토요일 오전에 기우제를 지내볼까? 그러면 마침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자연에 순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기우제가 지나고 봄비가 내리면 공기 중에 흩날리던 황사와 송홧가루도 비에 씻겨 내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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