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름은 배롱나무처럼

by Eun

더운 여름 한가운데에 큰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 구순이 넘으신 큰 어머님은 이번 여름을 이기기엔 버거우신 듯했다. 여름 볕을 가슴 가득 안으시고 그 열기를 이기지 못하시고 밤새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가는데 장례식장 입구에 꽃나무가 눈에 띄었다. 상여에 꽂는 꽃처럼 예쁘고 눈부신 모습이다. 형님에게 저 나무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그 꽃나무의 이름은 배롱 나무라고 말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우리 가족은 남해로 여름휴가를 갔다. 짐을 바리바리 챙기고 고속도로를 올릴까 하다가 도착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고성을 지나 사천 국도를 달리는 길을 택했다. 깊은숨까지 토해내게 만드는 푸른빛 남해바다를 끼고 차가 달린다. 바깥은 뜨거운 여름일 테지만 차 안은 그저 여유롭게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뿐이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달리다 얼마 전 보았던 배롱나무들이 길가에 길게 이어져있는 모습을 보았다. 뜨거움을 가지고 사는 꽃, 불꽃같은 붉은색, 바람에 흔들리는 꽃가지가 지켜내지 못한 누군가를 향해 손짓하는 듯했다. 떠나지 못한 잔상이 꽃을 매개로 남해바다와 겹쳐 아련한 기분을 들게 했다.

배롱나무는 무더위를 이겨내고 꽃까지 피우는 나무다. 처음에 차를 타고 가다 배롱나무를 보았을 때는 이름이 뭘까 궁금했지만 꽃 검색 앱을 열 여건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검색해 봐야지라고 마음먹었으나 시간이 지나면 꽃나무에 대한 궁금증은 쉽게 사그라들었다.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며 꽃을 피운 가로수들을 보는 날들이 반복되었고, 그럴 때면 여전히 똑같은 생각을 했으나 나중에는 그냥 저기에 있는 꽃나무구나 인정하며 지나쳤다. 그랬는데... 장례식장에서 그 이름을 알게 된 이후로는 아무 생각 없이 예쁘다고만 생각했던 꽃나무가 아닌 게 되었다. 자꾸 눈길이 머물고 발이 땅에 붙었다.

배롱나무는 목백일홍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백일홍과는 다르게 생겼다. 생김새가 비슷해서 목백일홍이 아니라 백일동안 꽃이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 한다. 백일홍의 소리가 변해서 배롱이 되었다고도 한다. 붉은색, 보라색, 분홍색 등 색깔도 다양하다. 줄기를 손가락으로 살살 긁으면 간지러운 듯 가지가 흔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은 간지럼나무다. 강렬한 햇볕에도 아랑곳 않고 꼿꼿이 허리를 펴고 멋들어진 수형으로 우뚝 서 있는 모습과 작은 간질거림에도 몸을 바르르 떠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꽃말이 부귀라니. 꽃말도 예쁜 나무다.

그렇게 여름 내내 배롱나무를 보았다. 나무는 말한다. 한여름의 붉은 꽃처럼 인생의 찬란한 황금기를 보낸 누군가에게 당신은 이렇게 화려했다고, 이렇게 뜨거운 여름 앞에 당당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나의 여름은 지나갔을까? 이제 가을로 접어든 것은 아닐까?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의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 마지막 꽃잎을 피워보고 싶다. 뜻밖에도 배롱나무는 아주 오랫동안 꽃을 피우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빨래방엔 낭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