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이 캠핑을 다니는 것을 보면서 나도 캠핑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름휴가철이나 가을 단풍여행을 갈 때도 펜션을 알아보고 예약하는 과정이 번거롭기도 했고, 그냥 차에 텐트 하나 싣고 자연으로 들어가 하루 여유롭게 쉬다 오는 여행을 지향하는 성격이라 굳이 볼거리, 즐길 거리를 염두에 두지 않는 캠핑이 나에게 딱 맞다고 오랜 전부터 생각해 오던 차였다. 남편에게 캠핑을 다녀보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니 뭐 하러 귀찮게 텐트 치고 짐을 나르고 하냐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가고 싶다고 했다. 다시 캠핑이 쉬운 게 아니다, 몸 고생 마음고생을 왜 사서 할 거냐, 살게 얼마나 많은지 아냐, 그 많은 짐은 어디에 놓아둘 거냐며 나의 마음을 돌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남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맞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그래, 이 나이에 무슨 캠핑이야. 그냥 부러워서 해보고 싶은 거겠지.'라며 쉽게 마음을 바꾸었다.
이런 나의 마음이 캠핑으로 기울어지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건 봄에 가족들과 함께 갔던 글램핑에서였다. 글램핑이 처음이라 들뜨기도 했지만 확실히 펜션과는 다른 낭만이 있었다.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파쇄석에 자리 잡고 장작을 피우고 불멍을 했다. 그러다 앉은자리에서 고개를 들면 별들이 총총히 떠 있었다. 숲 속이었고 이름 모를 새소리가 한 번씩 들리는 조용한 밤이었다. 장작불을 보며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은 붙잡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글램핑을 갔다 온 후 나는 본격적인 캠핑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야 할 것들은 많았고 돈도 꽤 들었지만, 알아보고 준비하는 과정은 색다르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SNS를 돌아다니며 캠핑족들을 구경하고 유튜브로 텐트 치는 법, 타프 치는 법 등을 연습했다. 준비가 차근차근 되어갈수록 빨리 실전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어서 쉽게 나서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 30도가 넘는 뜨거운 여름도 나의 발목을 잡았다. 유난히 긴 여름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 시간 동안 우중 캠핑, 한여름 캠핑을 하는 캠핑러들의 영상을 부러운 마음으로 보아야 했다. 그러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날 남편에게 캠핑을 가자고 말했다. 준비가 다 되었다고, 내가 미리 가서 준비를 해 놓을 테니 퇴근하고 오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빠진 것이 없는지 체크를 하고, 장을 봤다. 그리고 막내 아이와 함께 토요일 오후 거제도 몽돌 바닷가에 있는 학동자동차야영장으로 떠났다.
두근두근, 이렇게 설레는 감정이 얼마 만인가. 캠핑장을 향해 가는 마음은 마치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떠나는 마음과 같았다. 낯선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 기분이 이렇게 짜릿하고 신나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도 몇십 년 만인 것 같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캠핑장에 도착해 예약한 F21번 자리를 보니 머리에 폭죽이 터지는 듯 흥분이 되었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자, 이제 텐트와 타프를 꺼내보자' 사실 텐트는 원터치여서 그리 어렵지 않게 설치할 수 있지만, 천막 같은 큰 타프는 고난도였다. 기준이 되는 폴대를 잘 세워야 하고, 네 군데 꼭짓점도 팽팽하게 잡아당겨야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다. 차를 운전하면서 머릿속으로 수없이 복기를 했지만 역시나 실전은 만만치 않았다. 텐트를 간단하게 치고 타프를 펼친 순간 윽!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떻게 하더라, 이 끈은 어디에 거는 거였더라..'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아 멍하니 타프를 쳐다보고 있으니 아이가 '엄마 뭐 해'라고 물어본다. '정신을 차리자, 집중해 보자, 할 수 있다.....'
한쪽을 세우면 맞은편 폴대가 쓰러지는 과정을 몇 번 거쳐가며 양쪽 폴대를 세우고, 고리에 줄을 두 개 걸어서 직각으로 벌려 긴 못처럼 생긴 팩에 연결했다. 짱짱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펼쳐진 타프가 완성되었다. 어설픈 성공을 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실패했다면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왔을 것이다. 타프와의 사투로 벌겋게 익은 얼굴을 하고 텐트를 치고, 의자를 꺼내고 테이블을 조립했다. 텐트 안에 매트를 깔고 릴선으로 전기를 당겨와 선풍기를 틀고 잠깐의 휴식 타임을 가졌다. 타프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앉아 숨을 돌리고 나니 그제야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나와 같은 텐트가 반갑고, 나처럼 어설프게 캠핑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는 동병상련의 마음에 속으로 응원을 하게 되었다. 장박을 하는 예쁜 전구가 달린 텐트도 있고,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옷들을 빨랫줄에 널어놓은 텐트들도 눈에 들어왔다. 음악 소리, 웃음소리, 수다 소리가 들렸고 음식 냄새가 났다. 다들 하나같이 여유롭고 즐거워 보였다. 모두 자신의 캠핑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그 속에 내가 속해있다는 것이 낯선 감정으로 다가왔다. 내가 해냈다, 하고 싶은 것을 이루었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행복한 마음이 일었다.
쌀을 씻고 김치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구우며 저녁준비를 하고 있으니 남편이 퇴근을 하고 왔다. 뿌듯한 나의 표정에 신기하고 낯선 듯 텐트를 쳐다보더니 "잘했네, 어떻게 했데? 기술자네"라며 웃었다. 밥을 먹었고, 다 같이 설거지를 했다. 바닷가 산책을 하고 몽돌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쏘아 올린 폭죽을 바라보았다.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고 또 느긋하게 밤바다를 걸었다. 밤이 깊어지자 사람들은 자신들의 텐트로 들어갔고, 조명들도 하나둘씩 꺼졌다. 대신 별과 풀벌레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잠은 푹 들지 못했지만 아침밥도 해 먹고, 다 같이 설거지를 했고, 텐트와 타프도 잘 정리해서 돌아왔다.
긴장을 해서인지 집에 와서는 근육이 땅기고 피곤이 오래갔다. 첫 캠핑의 경험은 여러 가지 생각을 들게 했다.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다시 하고 싶기도 하고, 다시 하기 겁나기도 했다. 남편은 끙~거리는 내 모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을 보낸다. 그리고 2주가 지났다. 다음 주는 추석이 있다. 그리고 추석 앞에 주말이 있다. '주말에 저번에 갔던 캠핑장 한 번 더 가는 거 어때?'라며 남편에게 은근히 물어보니 '거기 말고 다르데도 가보자'라고 한다. 남편에게 말릴 때는 언제고 거봐라 좋지라는 눈빛을 보내본다. 그리고 얼른 캠핑장을 검색해 본다. 이제는 두 번째 캠핑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