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란, 최고로 애정한다는 뜻이다. 최애가 있다는 것은 다른 것과 견주어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애정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인데 그런 최애가 나에게도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청소년 시절에는 '소방차'와 '서태지와 아이들'이 최애였다. 그들이 프린트된 책받침을 사고 스티커를 사서 교과서마다 붙여 다녔으며, 그 시절 보물 1호였던 분홍 마이마이 카세트로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었다. 재방송이 귀하던 시절 밥상 앞에서 티브이에만 빠져있다가 숟가락으로 머리를 맞기도 했고, 승마바지를 사달라고 부모님을 조르기도 했다. 라디오에 초대손님으로 나오기라도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반복 듣기를 했고, 해체 소식에는 며칠 식음을 전폐하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고등학교 만홧가게가 나의 최애의 장소였다. 만화방은 교문 앞 골목 1분 거리에 있었다. 10시까지 하는 야간 자율학습을 가끔 빼먹고 만화방에서 황미나와 강경옥에 빠졌다. 만화방은 상상이 이루어지는 곳이었고 자연스레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가졌었다. 만화를 곧잘 그리던 나는 클라이맥스 부분을 그대로 그려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는데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듯이 등하교 때마다 만화방 문을 밀고 "이모, 오늘 별빛 속에 7권 나왔어요?"와 같은 말을 달고 살았다. 학교 가는 것 말고는 크게 할 일이 없었던 학창 시절, 자신에게 오롯이 모든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아이와 직장과 집안 살림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었다. 내 주장을 차선으로 미루고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우선으로 듣고, 가족이 좋아하는 취향의 음식을 먹었다. 이런 상황이 싫지 않았고 오히려 대리만족을 느끼며 행복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이 시점에서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아무거나'라고 말했던 엄마의 말이 새삼스레 떠오르는 것은 엄마의 나이를 살고 있는 내가 똑같이 아이에게 '아무거나'를 말한다는 사실이다. 좋아하는 것이 많았던 내가 좋아하는 것이 딱히 없는 엄마의 '아무거나'라는 말을 싫어했던 기억이 있다. 아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면 되지 왜 다 괜찮다고 하는지, 왜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하는지.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크면 하고 싶은 거 맘껏 하고 먹고 싶은 거 맘껏 먹을 거라고, 아무거나 안 할 거라며 철없는 말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런 내가 엄마의 삶을 산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엄마가 이해된다는 클리셰는 진부하지만 왜 그렇게 말을 했는가는 늦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너무 살기 힘들어서가 아니다. 바쁘고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된다. 다른 의미에 가려져 최애가 중요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굳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넓고 얕은 지식보다 좁아도 깊은 지식이 있어 그 부분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을 때 자신이 빛난다는 것을 느낄 것이며 그것이 살아가는 재미를 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태풍을 견딘 바다가 더없이 잔잔하고 푸르듯 인간의 생애 주기를 착실하게 산 중후반의 나이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꼭 동글동글한 '아무거나'가 되라는 법은 없다. 10대 시절의 최애가 맹목적인 사랑이라면 중노년의 최애는 잃어버린 나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요즘은 트로트가 중, 노년에 최애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자식들이 독립하고 오랜 세월 가족 뒤치다꺼리만 하고 살던 삶에 살아갈 이유와 재미를 다시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임영웅이나 영탁 같은 가수에 빠져 색깔 풍선을 들고 전국을 따라다니며 활기찬 인생 후반을 산다. 10대들처럼 굿즈를 사고 티켓팅을 한다. 그들의 달뜬 얼굴은 행복으로 가득해 보인다.
누군가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을 하지는 못하지만 최애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최애는 꺼져있는 활력의 불씨를 살리는 것이며,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는 짜릿한 모험이다. 누군가 나에게 최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독서와 캠핑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행히 읽고 싶은 책은 세상에 흘러넘칠 정도로 많아서 독서는 평생의 최애가 될 것 같다. 또한 주말을 기다리고 캠핑을 준비하는 시간은 만화방에서 신간을 기다리는 어린 시절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최애와 함께 하는 삶, 나를 정의하고 나의 정체성의 한 부분이 될 최애를 계속 사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