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이가 달린 컵이 있다. 한 아이가 그 컵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 아이에게 옆에서 본 컵의 모습, 위에서 본 컵의 모습, 아래에서 본 컵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아이는 내가 한 말은 틀렸다고 한다. 자신이 본모습과 다르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이리 와서 옆도 보고 위에 가서도 보고 밑에서도 보라고 말한다. 컵은 하나의 모습이 아니니 가까이에서도 보고 멀리에서도 보라고 한다. 아이는 완강하다. 자기가 본 컵의 모습만이 진실이며 보지 못한 것은 못 보았으니 모르겠다고 말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행위들이 있다. 이것은 나를 위한 일이고, 상대를 위해서도 꼭 해야 할 당위성을 가진다. 내가 선택한 행위는 모질어도 해야 하는 말이고, 마음 아프지만 뒤돌아서야 할 행동이다. 나는 완강하게 자신을 다독인다. 맺고 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냉정해져야 한다고 자신을 부추긴다. 결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주워 담을 수도 없다고 한다. 정면에서 컵을 보는 아이처럼 진실을 보았기 때문에 취한 적절한 행동이었으므로 따라서 행위에 대해서는 죄책감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내 곁에서 사라져 간 사람들을 시간이 흐른 뒤 되돌아보았을 때도 판단이 적절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차를 운전할 때 시야가 좁으면 사고 위험이 있고, 주장을 할 때 근거가 부족하면 상대를 이해시키지 못한다. 또한,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삶의 반경은 작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주워 담을 수 없는 판단이라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행위는 신중해야 한다. 손잡이가 달린 컵의 정면만을 고집하는 아이와 같은 모습이라면 나의 판단은 인정받지 못한다.
보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보았기 때문에 옳은 판단이라고 말하는 것을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대신 힘이 빠지는 것은 컵의 옆모습을 본 사람이며, 등을 돌리는 것은 컵의 위와 아래 모습까지 본 사람들이다. 당신의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모습이 전체라며 발을 동동 굴리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