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있는 넓은 탁자는 나의 작업 공간이다.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오전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탁자 위는 항상 무언가로 가득하다. 어제 마신 커피잔과 감을 깎아먹은 흔적들이 탁자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컴퓨터를 켜고 컵과 쟁반을 치우고 주위를 정리한다. 언제부턴가 나와있는 화장품들 사이에 먼지가 앉았다. 먼지를 쓸어내며 이 물건들이 언제부터 여기에 나와있었는지 생각해 본다. 안방 화장대는 사용하지 않은지 꽤 된 것 같다.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품을 나열하고 정성스레 화장을 하는 모습은 사라졌다. 내 모습에 관심이 없어지고 화장을 해도 별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어느 날이 그 시작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사용할 일이 거의 없는 마스카라와 색조화장품이 버려지지 않고 그 공간을 차지하고, 거실 탁자에는 너도 바르고, 나도 바르는 화장품들이 한 공간을 차지했다. 어울리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화장품을 보니 정리 정돈을 매일 하고 불편해도 제자리를 고집했던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을 하던 30대 때는 이웃들의 '참 잘 꾸며놓고 산다'는 말이 좋았다. DIY로 집 꾸미기 열풍이 불기도 했던 때라 목공을 해서 탁자를 만들고, 미싱을 돌려 커튼과 쿠션을 만들었다. 벽지도 방마다 다른 색으로 바르고 아기자기한 소품을 곳곳에 배치했다. 아파트 안에서 '저 집이 예쁘다더라'라는 소문이 들릴수록 행복했고 능력이 있는 '살림의 여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집을 예쁘게 하고 살고 싶다는 내 소망은 아이들에게는 잔소리로 남편에게는 불만으로 이어졌다. 나처럼 그들도 치우고 깔끔하게 뒷정리를 했으면 했다. 집에 오면 신발을 돌려 정리했고, 이불도 각을 잡아 정리했다. 아이들이 책을 보고 나면 순번대로 다시 정리했고, 옷도 색깔별로 정리했다. 소품으로 집을 꾸미고 하루에도 청소기를 네다섯 번을 돌렸다. 수시로 가구 배치를 달리하고, 불편해도 예쁜 구조를 선호했다. 가족들에게도 예쁘고 정돈된 집에 살면 좋지 않냐며 정리 정돈을 요구했다. 그렇게 하면 가족들이 나의 호소에 동조하고 같이 노력할 줄 알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편리함을 추구하는 가족들은 오히려 깔끔한 집을 불편해했다. 특별한 정리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늘 똑같이 어질렀다. 나는 우리 집보다 깔끔한 이웃집을 보거나, 정리하는 습관이 밴 아이들을 볼 때면 왜 우리 집은 저 집처럼 안 될까 속상했다. 이런 불만을 커져만 갔고 나중에는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지 않거나 어질러진 모습을 보면 신경이 곤두서고 화가 뻗쳤다.
그러던 어느 날 청소를 하다가 여전히 빨래통에 들어가지 못하고 걸쳐져 있는 수건을 보게 되었다. 순간 역시 사람은 안 변하는구나를 절실히 깨달았고 슬펐다. 그다음부터는 청소에 손을 놓고 나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답을 찾고 싶었다.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컵 하나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고 그게 그렇게 화가 날 일인가 생각했다. 신발이 뒤집어져 있고, 이불이 각이 잡혀있지 않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잘못인가를 생각했다. 효과도 없는 잔소리를 왜 계속하는 것일까 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렇게 청소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해야 하니까,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으니까 했던 것 같다. 남들이 집이 예쁘다고 하니 더 예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 마음으로 한 행동들은 불만과 억울한 마음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부딪치며 새긴 멍이 몸을 푸르스름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어렵긴 하지만 내려놓자고 마음먹었다. 내가 청소하지 않으면 집이 꼴이 말이 아닐 거라 생각하며, 그래 이 기회에 나의 고마움을 좀 알겠지라는 마지막 자존심도 부려보았다.
서로에게 새긴 멍 자국이 흉터가 된 지금 우리 집은 무질서 속 질서를 잡아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습관만을 요구한다. 그리고 나도 나의 생활 반경에 맞게 나의 물건들을 배치했다. 화장품과 노트북은 거실 탁자에, 책들은 소파 팔걸이에 두었다. 부엌 물건들도 사용하기 쉽게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고, 신발은 계절 상관없이 나와있다. 집에 대한 관심이 멀어질수록 집은 쉬기 위해 머무르는 공간 정도로 생각이 되었고, 정리 정돈을 하는 습관을 가지게 하는 것이 가정교육이라는 생각은 어질러진 책상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와 정리 정돈은 잘하지 못하지만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무리 없이 하는 아이를 보면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다.
멍이 들어가며 서로 부딪칠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은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처럼 집안의 평화를 선택한 순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책들을 겹겹이 쌓아두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가족들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 멍이 사라진 자리 옅은 흉터를 보며 오늘도 비워내자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