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싶어 일찍 집을 나섰다. 내가 있는 곳은 카페 2층이다. 빗소리와 스피커에서 나오는 나른한 피아노 선율이 어우러지며 공간을 메우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연한 주황색 립스틱 자국이 묻은 커피잔과 좀 전까지 읽다 덮어놓은 책이 나란히 있다.
잠시 굽은 허리를 펴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창으로 시선을 옮겨본다. 맑은 날씨에 햇빛을 차단할 용도로 쓰였을 붉은색 어닝은 빗물을 머금은 검붉은 색이 되었다. 고정되지 않은 무거운 천이 바람에 살포시 나부끼며 빗물들을 털어낸다. 자리 잡은 창가 쪽 유리에 비가 부딪친다. 유리에 부딪친 빗방울들은 잠시 머물다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흘러내린다. 천천히 흘러내리는 빗방울은 맺힌 빗방울과 만나는데 그러다 점점 무거워지면 좀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흘러내린다. 흘러내리는 빗물로 인해 유리에는 불규칙한 세로의 빗물선들이 생긴다. 빗물선은 유리창에 바쁘게 흔적을 남기고 빗방울은 계속 그 흔적을 덮어버린다. 그 모습을 보며 빗방울은 유리창에 만들어지는 빗물선을 지우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결국 그 빗방울조차 직선으로 내려가는 빗물선이 되고야 만다는 사실을, 빗방울들은 알기나 하는 것일까를 또 생각하다가 사람들도 지우고 싶은 흔적을 지울수록 더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흘러내린 빗물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바깥 풍경으로 시선을 옮겨본다. 비가 와서 그런지 한산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평소보다 지나가는 차는 줄었고 주차되어 있는 차도 줄었다. 느린 속도로 지나가는 트럭 뒤로 해변가에 차를 주차한 사람이 이마에 손차양을 하고 뛰어 길을 건너고 있다. 회색의 바다는 끊임없이 출렁거리고 덩달아 흰색과 빨간색의 부표들도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물기 머금은 공기는 시야를 뿌옇게 만들고 벚꽃 떨어진 벚나무는 비바람에 노출된 채 자연에 순응하며 자신을 흔들도록 허락한다. 비가 그치고 나면 짙은 초록으로 물들 이파리들을 상상하면서 봄비의 축제를 즐긴다.
잠깐의 시간에 누리는 평화로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