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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 이야기-1

소설

by Eun

깜박 잠이 들었다. 싸늘한 한기가 문쪽으로 놓인 발을 살짝 건드리자 시우가 움찔하며 눈을 뜬다. 통통한 손으로 눈을 비비고 바깥을 보니 칠흑 같은 밤하늘에 별 몇 개가 반짝거린다. 몇 시쯤 된 것일까? 정시우는 아무렇게나 벗어둔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가본다.

로열골드맨션 옥상에는 시우와 천문자가 만들어 놓은 옥탑방이 있다. 물론 그들 외에 다른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지만 옥상 출입을 잘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천문자 할머니는 옥상 텃밭을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만에 하나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채소 하우스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누가 그랬는지 세입자들을 찾아다니며 드잡이를 해대는 통에 다들 옥상은 꺼리는 공간이 되었다. 덕분에 옥탑방은 시우의 놀이방이 되었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아빠를 하루 종일 기다리는 공간이 되었다.

아빠는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이자 불법체류자다. 시우 아빠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한국에 왔다. 현장 근로자로 있으면서 열심히 일했지만 고용허가 기간이 종료되었다는 이유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는 '불법체류자인지 몰랐다'는 핑계가 가능한 현장직 특성과 현실을 담지 못하는 제도 뒤에 숨어 일을 하고 있다. 시우 아빠가 신분을 속이면서까지 한국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시우 엄마 때문이다. 시우 엄마는 고용허가 기간이 만료되자 결혼 비자를 받아 한국에 영구 정착하고 싶어 했다. 자국에 있을 때도 얼굴이 예뻐 주위에 남자들이 많았는데 그 얼굴이 한국에도 통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시우를 낳고 생긴 산모우울증과 빠듯하고 나아지지 않는 삶에 지친 나머지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고 결심을 한 것이었을까. 아무튼 화장이 짙어지고 외출이 잦아지던 어느 날 시우 엄마는 돈 되는 것들(하물며 얼마 전에 산 새 냄비까지)을 빠짐없이 챙기고 사라졌다. 붕어빵을 사서 퇴근하던 아빠는 도둑맞은 것 같은 집과 거실 한가운데서 울다 지쳐 잠든 시우를 안고 있는 천문자를 보았다. 그래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짐작은 했었지만 오늘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는 시우 아빠의 말에 천문자는 처녀라고 속이고 다니는 것 같더라, 한국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면 결혼비자를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 아마 결혼을 주선하는 중개인의 말에 속아서 집을 나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정신 차리면 안 돌아오겠나, 생때같은 자식이 눈에 밟혀서라도 돌아오겠지. 안 오면 인간도 아니지. 꼭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마음 단단히 먹고 시우 잘 키우고 있어. 나도 도와줄 테니"

물심양면으로 아들처럼 챙겨주는 천문자 덕에 술로 찌들어가던 시우 아빠는 정신을 차렸다. 아빠의 마음을 알았는지 시우도 착하고 씩씩하게 자랐다.

집으로 내려간 시우는 불 꺼진 거실을 확인하고 아직 아빠가 오지 않았음을 알았다.

'지금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오고 있을지도 몰라.'

시우는 쌀쌀한 날씨에 아빠의 두꺼운 작업 점퍼를 하나 더 껴입고 목도리까지 두르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신발을 신었다. 그때 갑자기 현관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현관문 소리가 났다.

'어? 누구지?'

시우는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요즘 들어 싸움이 잦은 101호 선아 아빠와 201호 길춘남 아저씨를 조심하라는 아빠의 말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아래층 복도에 불이 잠시 켜지더니 일 층으로 내려가는 조용한 발소리가 들렸다.

'201호 아저씨다!'

시우는 다시 현관문을 닫았다.

'어떡하지? 옥상에 올라가야 하는데... 아빠올 때 손흔들기로 했는데...'

시우는 현관에 쪼그리고 앉아 문에 귀를 바짝 대고 소리에 집중했다.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지만, 춘남 아저씨와 마주치는 것은 싫었다. 얼마 전 복도에서 혼자 중얼거리다가 몸을 움찔거리더니 다른 목소리로 또다시 중얼거리는 춘남 아저씨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괴한 표정으로 '키키키'거리며 집으로 들어가는 춘남 아저씨는 보며 시우는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로 춘남 아저씨만 보면 소변 마려운 강아지마냥 다리가 배배 꼬였다.

'오늘은 안 되겠어. 그냥 포기하자'

시우가 나가기를 포기하고 일어서려고 할 때 또다시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좀 전에 들었던 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춘남 아저씨가 집으로 들어가는 걸까? 한 번 볼까?'

시우는 또다시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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