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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하다

나를 표현하는 단어-1

by Eun

나도 한때는 잘 나가는 주부였다. 청소도 퍼펙트, 요리도 퍼펙트, 육아도 퍼펙트. 모든 면에서 잘난 축에 속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무슨 혈기가 그렇게 왕성했는지 아침에 아이들 등교시키고 나면 락스로 화장실이 윤이 나도록 청소했고 그래서 하수구 구멍이며 수도꼭지가 광이 났더랬다. 모든 물건들은 가지런히 횡과 열을 맞추었고,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 바닥은 기본이었지. 요리도 참 잘했었다. 식당을 했던 엄마의 손맛 유전자를 물려받아 조리사 자격증도 땄다.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 토스트해서 먹이고, 아이들 반찬과 어른 반찬을 끼니때마다 식탁에 올려놓았으며 틈틈이 베이킹도 했었던 그때야말로 주부로서의 전성시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럼 지금은 어떤가? 결혼하고 26년이 흘렀다. 밥을 (하루 2끼 먹는다고 치고) 약 만 구천 번의 밥상을 차렸고, 만 구천 번(천 번은 가족이 했다고 치자)의 설거지를 했다. (어쩐지 요즘 들어 손목이며 손가락 마디가 아프더라니) 돈을 벌어보려는 한 번의 외도는 주부생활의 즐거움을 해야만 하는 의무감으로 바꿔놓았다. 반복되는 상차림에 시큰둥한 가족들의 반응도 나를 부엌에서 밀어냈다. 나도 잘 됐다 싶은 게 이쯤 되니 슬슬 하기싫어 미루게되었고 부엌에 가기 싫은 마음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주위에 잘하는 반찬 가게가 어디 있는지 찾게 되었고, 반찬을 사서 밀폐용기에 다시 담아 마치 내가 만든 반찬인 것처럼 속이는 완전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입맛이 그저 그런 가족들은 샀다는 것을 모르고 맛있게 먹었다. 실제로 나중에 멸치 반찬이 00촌 반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가족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다. 뭐 그게 놀랄 일인가. 오히려 그럴 줄 몰랐다는 말에 내가 더 섭섭했다.

이왕 이렇게 반찬을 사 먹게 된 이상 가족들도 입맛에 맞는 반찬을 먹고야 말겠다는 심리가 작용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찬을 먹을 때마다 이건 어디 건지, 저건 어디 건지를 묻고 따지기 시작했다.

"이번 건 어디서 샀어? 반찬들이 맛있네. 특히 멸치가 짭조름하니 딱 내 입맛이네."

"엄마, 콩자반은 사지 마. 장조림 사 줘."

참내, 처음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이걸 먹으라고? 어떻게 만든 건지 알고 먹으라는 거야. 계속 이렇게 살 거야. 그럼 이제 반찬은 안 해?' 같은 말들을 쏟아내더니 (그렇다고 모든 반찬은 사는 것도 아니다. 매번 국도 끓이고 제철 나물들은 직접 만드는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자기가 원하는 반찬을 사라고 말하는 꼴이 보기 싫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잠자코 가족들이 원하는 반찬을 부지런히 사다 날랐다.

그러는 와중에 경기를 타고 반찬 맛집들이 사라지기도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예전같지 않기도 해서 입맛에 맞는 반찬을 찾는 반찬원정대는 끝없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러 떠나야 했다. 손이 많이 가는 반찬들은 퇴근 후 나의 조리 시간을 단축시켜 주었기에 그 탐험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그러다 오일장이 열리는 장터에 반찬이 예술이라는 고수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나는 차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가 기본 반찬들을 공수했고, 그날 저녁 식탁에 자랑스럽게 반찬을 공개했다. 가족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할머니가 하신다고? 맛있네, 양도 많고. 이제 이 집에서 사."

"엄마 이 오징어채 안 맵고 맛있어."

그래, 그래. 맛있게 밥을 먹는 가족들을 보며 좋아해야 하는 건지, 씁쓸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 또한 이제는 반찬 유목민 생활을 청산하고 한 곳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있던 터라 열린 마음으로 가족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벌써 이 주 전에 샀던 반찬들이 사라져 간다. 퇴근하고 한 시간 반이 넘도록 부엌에서 바삐 움직였지만 식탁이 빈 곳이 많다. 젓가락이 두세 군데 반찬에 몰려 정체 현상을 일으킨다. 가족들은 나를 본다 '그 반찬 어딨어?'라고 묻는 것 같다. 다음 날, 나는 차를 타고 반찬가게를 향해 달렸다. 할머니네 반찬가게는 인기가 많아 오후에 가면 다 팔려버리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반찬이 다 팔리면 할머니는 집에 가버리시기 때문이다. 열 시가 안 돼서 도착하니 역시나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도 많이 먹는 법이라고, 화려한 반찬들이 빈 곳 없이 양푼이에 가득 담겨있다. 앞서 오신 두 분이 반찬을 사는 중이다. 느긋하게 순서를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살 것들을 찍어본다. 드디어 내 차례다.

"할머니, 멸치볶음이랑 오징어채 주세요."

"그리고 마늘 김치도 주세요."

"그리고 도라지 무침이랑 총각김치도 주세요."

노동으로 굽어버린 허리를 가진 할머니의 손이 넉넉하다. 가늠하다 한 국자, 또 가늠하다 한 국자 더. 감각만으로 반찬을 담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앞서 반찬을 사신 분의 '그만 담아요. 남는 것도 없겠네'라는 말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맛있는 반찬을 아무런 수고도 없이 돈을 주고 사 먹는 것이 감사하고 고마웠다.

"할머니, 얼마예요?"

"0만 오천 원."

"예? 오만 오천 원이요?"

"새댁이 뭐라고 하노, 이만 오천 원이라고. 무슨 반찬이 오만 원이나 하겠노. 허허"

"아... 하하 네. 전 또 양이 많길래."

장바구니 가득한 묵직한 반찬을 보며 오만 원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양이긴 하다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지. 할머니 말처럼 무슨 반찬이 오만 원이 넘겠는가. 왜 오만 원이나 돼요? 총각김치가 얼마였어요? 하면서 물어봐도 되지 않는가. 그냥 돈 달라는 데로 주려는 나를 보면서 어쩜 이리도 맹할까 생각한다.


맹하다 : 싱겁고 흐리멍덩하여 멍청한 듯하다. (유의어 : 멍청하다. 싱겁다. 흐리멍덩하다./ 반의어 : 약다)


p.s : 약은 모습을 경계하며 살기는 했다. 약삭빠르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보다는 양보하고 남은 것을 챙기는 사람이다. 혹시나 이기심에 눈이 멀어 약삭빠르게 행동한 날에는 '내가 왜 그랬을까. 그게 뭐라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후회했다. 하지만 흐리멍덩은 아니지 않은가? 멍청한? 이것도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 맹한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흐리멍덩하고 멍청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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