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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빵이 그랬다

by Eun

60~70년 대 유행했던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는 가사를 기억하는가? 우리 산업의 한 축이었던 섬유업과 재봉업에 종사한 청계천 미싱공들의 삶을 노래한 노찾사의 <사계>라는 노래에 나오는 가사이다.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는 가사는 2000년대 사회에 적용해 보면 택배 상하차장에서 쉬지 않고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와 같다. 가을엔 쌀, 겨울엔 김장김치가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다. 추석과 설날 명절 선물들과 생수, 라면, 휴지 같은 기본적인 생활필수품까지 컨베이어 벨트에 오른다. 하루 생활권, 반나절 생활권의 실현을 위한 빠른 운송을 위해 물류센터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택배 시대, 세상은 택배로 인해 더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다.


택배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얼마나 자주 하냐는 횟수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 보니 여느 집처럼 우리 집 복도에도 택배 상자가 늘 쌓여있다. 주말마다 분리수거를 해도 '상자 정리 안 해?'라는 오해를 받는 택배 상자들이다. 이번에도 다가올 여름을 위해 여름 잠옷과 선크림, 햇빛을 차단해 주는 암막 커튼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대부분의 택배는 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물품들이니 충동구매도 아니며, 가격비교도 꼼꼼하게 했기 때문에 잘 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편리한 택배가 마냥 좋다고 하기엔 뭔가 개운하지 않을 때가 가끔 있다.


몇 년 전 가족과 군산을 여행할 때 꽤나 유명하다는 이성O 빵집에 갔었다. 빵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인 가게를 보며 가족들은 그냥 가자고 했지만, 나는 한 시간을 넘게 줄을 서 제일 잘 나간다는 단팥빵과 야채빵을 획득했다. 의기양양한 나의 기분과 달리 가족들은 이 빵 사려고 그렇게 줄을 섰냐며 나의 수고를 유난한 행동으로 치부했다. 생각보다 모양도 평범했다. 그래서 그런지 별 기대가 안 되었다. 하지만 빵 맛은 이제껏 내가 먹었던 어떤 빵보다 맛있었고, 가족들도 맛있다며 좋아했다. 많이 샀나 싶었지만 오가는 차 안에서 요깃거리로 먹다 보니 스무 개가 금방 동이 났다. 그날 이후로 그때 먹었던 빵 맛이 잊히지가 않고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하지만 빵 맛이 잊히지가 않으니 세 시간을 달려 군산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정도까지'에는 해당되지 않아서 '언젠간 가야지'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으로 빵을 주문할 수 있는 사이트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주문하고 받는데 근 한 달이 소요된다고 한다. 하지만 한 달이 문제인가. 차를 타고 군산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얼른 택배 주문을 했다. 역시 택배가 최고라며, 만족해했다. 그럼 나는 빠른 세상에 발맞춰 현명한 소비를 한 것이 맞을까? 정말 시간과 돈을 절약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빵을 먹는 순간 후회했다. 먼저, 그 빵을 먹고 나니 군산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줄어들었다. 꼭 가야 할 이유가 하나 사라진 여행에 흥미가 식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택배로 온 빵은 1시간 넘게 줄을 선 끝에 맛본 빵 맛의 기억을 불러오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날의 빵 맛과 시간이 지나면서 한 꺼풀씩 입혀진 상상의 맛과 기분 좋은 기억들이 꿈처럼 사라졌다. 뭔가 개운하지 않은 부분, 그것은 모든 것을 택배로 받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모든 것을 택배로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택배는 시간과 노동을 줄여주고, 무엇보다 빨리 배송된다. 컨베이어 벨트처럼 잘도 돌아가는 세상이니 빠른 것이 좋아 보인다. 하지만 가끔씩은 느림과 기다림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느린 만큼 설렘이 크고, 기다린 시간만큼 행복은 더 달콤하기 때문이다. 딱, 그 빵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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