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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 이야기-2

소설

by Eun

"희망이라고 불러."

"아~~~ 알겠어. 희망아~~ 희망아~ 이리 와."

주말 아침, 정시우는 편의점에 라면을 사러 갔다가 경비실 앞 평상에 앉아있는 이유리를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누나의 얼굴엔 있어야 할 그늘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표정은 더 밝아 보이고 목소리에도 편안함이 느껴졌다. 유리의 얼굴을 본 시우는 죄책감이 조금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응달의 눈은 아직 녹지 않았지만 한낮의 햇살은 제법 따뜻해서 오히려 집에 있는 것보다 나와있는 것이 나은 시각이었다. 시우는 유리와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폴리스라인이 있었던 한 지점을 응시했다. 보면 볼수록 그날의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해?"

유리가 물었다. 시우는 유리의 눈이 자신을 그날로 끌고 가 사건의 한가운데에 데려다 놓는 것 같은 섬뜩함을 느꼈다.

'말하면 안 돼. 그럼... 그렇게 되면...'

시우는 자신도 모르게 말이 새어 나올까 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말했다.

"아.. 아니야, 누나. 나 이제 들어갈게. 아빠가 라면 사면 바로 집으로 오라고 했는데 깜박했다. 헤헤~~ 희망이도 안녕."

유리는 손을 흔들며 건물로 들어가는 시우의 모습을 끝까지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옥상을 쳐다보았다.

'말해. 말해, 시우야. 너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니....'

"아빠, 잘 갔다 와."

오늘도 시우는 옥상에 올라 출근하는 아빠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한 번을 안 돌아보네. 힝~"

손을 내린 시우는 한동안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려다 자신을 쳐다보는 길춘남과 눈이 마주쳤다. 시우는 갑자기 몸이 굳는 것 같았다. 길춘남은 자신을 째려보는 눈을 거두고 천천히 열쇠를 손가락에 끼워 돌리며 오토바이를 향해 걸어갔다. 출근을 하는 것이다. 시우는 천천히 쪼그리고 앉으며 몸을 숨겼다. 시우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복도에서 길춘남과 눈이 마주쳤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날, 시우는 또다시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문이 열릴 줄 알았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길춘남과 눈이 마주쳤다. 길춘남은 먹잇감을 포획한 맹수의 눈을 하고 한 계단.. 한 계단 조용히 계단을 올라왔다. 손에 든 플라스틱 생수 통이 리듬을 타며 흔들거렸다. 그 모습을 본 시우는 얼른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걸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얼른 방에 들어가서 이불속에 몸을 숨기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시우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끼익~~끼익~~"

문 손잡이가 왼쪽 오른쪽으로 돌아가다 잠긴 것을 확인했다는 듯 멈췄다.

"꼬마야~ 아저씨가 할 말이 있는데... 듣고 있지?"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복도 공간을 한 바퀴 돌고 울림소리가 되어 시우 귀에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넌... 오늘.... 나... 안 본 거야... 누가 물어보면 아무도 못 봤다고 해야 해... 안 그러면.... 아저씨가... 혼내줄 거거든.. 키키키"

시우는 헉! 하는 소리가 나자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놀란 토끼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못 봤어.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어. 난 아무도 못 본 거야. 그런데 왜 못 봤다고 해야 해? 몰라, 이유는 없어. 그냥 아무것도 난 몰라. 아.. 아빠! 아빠는 왜 안 오는 거야? 시우는 보는 사람도 없는데 들키면 안 되는 것처럼 엉금엉금 거실로 기었다. 그 순간,

"철컥, 철컥, 끼이익~~~"

시우의 등 뒤로 현관문이 열렸다. 놀란 시우의 심장은 멎을 것만 같았다.

"시우, 거기서 뭐 해? 아빠 왔다. 늦었지? 오늘 야근이었는데 안 말했다"

야근을 한 아빠의 피곤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우는 갑자기 모든 힘이 풀렸다. 그리고 울음이 터졌다.

"으허헝~~~~"

"시우, 왜 그래? 혼자 있어서 무서웠어? 아빠 늦어서 미안해."

"으허헝~~~"

"시우, 오늘따라 왜 울어? 시우아~~"

다음날 눈을 떠보니 바깥이 시끄러웠다. 시우는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베란다로 나가보았다. 사람들이 건물 밖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 경찰차다."

차를 좋아하는 시우는 빨간 불빛이 돌아가는 경찰차를 자세히 보기 위해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잘 안 보이네? 옥상에 올라가서 봐야지."

시우는 얼른 슬리퍼를 끌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깨작발을 하고 목을 쑥 내밀고 난간에 기대어 내려다보니 노란색 끈이 건물 입구 한편에 둘러쳐져 있고, 그 안에서 이유리와 유리 엄마가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흰색 물감으로 어떤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마침 구급차가 도착하고 흰 천을 씌운 물건을 구급 대원들이 들어 차로 옮겼다. 그건 누가 봐도 사람이었다. 시우는 큰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일까? 어젯밤에 어떤 일이 생긴 걸까? 시우는 본능적으로 길춘남을 찾았다. 하지만 모인 사람들 중에 길춘남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유리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옥상을 쳐다본다. 그러다 시우와 눈이 마주친다. 깜짝 놀란 시우는 죄를 지은 것처럼 몸이 오그라들어 얼른 숨는다.

'유리 누나가 날 봤잖아? 유리 누나는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시우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다 멈칫했다. 아래층에서 휘파람을 불며 내려가는 길춘남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시우는 다시 몸이 움찔거리는 것을 느끼곤 얼른 집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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