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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2일 차

발은 빠르게, 생각은 느긋하게

by Eun

"띠리리링~~"
알람에 맞춰 눈을 뜬다. 물과 수건을 챙기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러닝 2일 차다. 어제와 다른 점이라면 B와 같이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저녁을 먹고 소화시킬 겸 동네를 걸었던 경험이 전부인 B는 어제의 나처럼 러닝을 만만하게 보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나도 안다. 나도 저 표정이었지. 어제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그래, 지금 웃자. 좀 있으면 달아오른 얼굴로 헉헉거릴 테니. 스마트워치에 앱을 켰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첫날 운동 후 러닝 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대가 되었는데 알아보니 생각보다 관련 앱이 여러 개였다. 우리나라에 러닝 인구가 점점 증가한다더니 관련된 앱도 많구나 싶었다.
'아이쿠, 이 앱들이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아무거나 다운로드해도 되려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을 신호로 동굴 속에 숨어있던 반감이 고개를 내밀었다. 고질병 중의 하나인 선택 장애가 발생했다.

나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불가증후군(사실 장애라는 말은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표현이라 함부로 쓴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이런 표현이 있다.)을 가지고 있다. 점심을 먹을 때, 물건을 살 때, 직업을 선택하거나 인간관계에서도 선택의 순간이 온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선택지가 늘어가고 선택해야 할 것들도 많아진다. 아무거나 선택해도 별 차이를 못 느꼈던 과거와 달리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치가 달라지는 오늘을 살고 있기 때문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넘치는 정보와 풍요로운 사회가 나를 더 볼품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도 같다. 분야별로 잘게 쪼개져 특성화된 선택지가 많아지는 요즘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 노출될수록 생경한 분야를 접하는 횟수도 증가한다. 그러면 내 안에선 새로움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마주했을 때 생기는 작은 불안들이 고개를 든다. 또 가능성이 많은 세상에 가능한 것을 누리지 못하는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 같아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나에게 맞는 길을 가자.'
나는 이런 선택불가증후군이 생길 때마다, 호흡을 고르고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앱을 다운로드하고 싶을까? 러닝을 잘하고 싶어서다. 그럼 어떤 도움을 받고 싶은가? 속도와 거리를 매 회 기록하고 싶다. 더 필요한 도움은 없나? 정보를 얻고 싶다. 간단한 질문에 답을 하고 검색한 앱 중에서 두 개를 다운로드했다. 그리고 오늘 두 개의 앱을 실행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어제보다 가뿐한 느낌은 들었지만 여전히 반환점을 돌고 나서 러닝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빠른 파워워킹으로 운동을 마무리했다. 나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걷고 뛰었던 B는 골반이 삐뚤어진 것 같다, 발바닥이 아프다며 붉어진 얼굴을 하고 손을 흔들며 갔다.

앱에 4.31 킬로미터, 평균 페이스 10분 50초, 운동 시간 46분 45초라는 기록이 떴다. 잘한 것인지, 남들은 어떤지 궁금했지만, 비교하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오늘은 앱에 신경 쓰느라 아름다운 바다와 찬란한 일출을 마음에 담을 수가 없었다. 조금 느리게 걸었더라도 기록은 안 좋았겠지만(더 낮을 기록도 없지만) 감성은 충만했을 테다. 전문 러너처럼 될 것이 아니라면 저기 나무까지 뛰어보자 목표를 정하고 뛰면 된다. 그리고 숨 고를 시간에는 파도 소리도 듣고 내 안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면 된다. B와 서로 동기부여하며 새벽 러닝 습관을 만들 수 있으면 만족이다. 그리고 앱은 많이 의지하지 않는 것이 나의 성격과 맞는 듯하다. 이렇게 나만의 속도로 계속 이어나간다면 느리지만 분명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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