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7

by Eun

정상태가 내밀었던 사진은 선아 아빠가 죽기 전날 밤에 찍은 사진이었다.


그날 정상태는 극세사 이불을 덮고 뜨끈한 전기장판에 누워 몸을 지지며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 주가 겨울 중 제일 추울 거라는 일기예보에 혹시나 수도관이 동파되지는 않은지 점검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불만 걷어도 한기가 느껴져 나가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정상태는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그때 창밖으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으잉? 저 비틀대는 사람 선아 아빠 아니야? 참~내, 저 양반 뉴스에서 동장군도 울고 갈 한파라고 그렇게 얘기하는데 슬리퍼에 점퍼 하나 걸치고 어디를 가는 거야? 보나 마나 술, 그놈의 술 사러 가는 거겠지. 에잇! 오다가 자빠져 버려라. 그럼 술도 못 마시고, 건물이 무너질 정도로 매일 싸우지도 않을 테니... 쯧쯧"

정상태는 작은 창문을 통해 비틀거리며 비탈길을 내려가는 선아 아빠를 보며 혀를 찼다. 그리고 작업복 위에 롱패딩을 걸치고 목도리를 둘렀다. 장갑 낀 손에 손전등을 들고 야간 순찰을 나가기 위해 오래된 창호 문을 열었다.

"으으으~~ 오늘은 유난히 칼바람일세. 수도관이 얼면 안 되는데. 아 참! 난로에 등유가 남았던가? 얼른 한 바퀴 돌고 등유통 하나 가져와야겠다."

정상태는 손전등을 흔들며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수도관에 동파방지 단열재가 잘 싸여있는지 확인하고, 복도 창문이 열린 곳은 없는지 점검했다. 고양이들이 쓰레기장을 헤집어 놓지는 않은지 둘러보았고, 건물 오른쪽 구석에 청소할 때 사용하는 수도꼭지가 조금 틀어져 있는지 확인했다. 모든 게 별 이상 없다는 생각이 들자 정상태는 몸이 얼기 전에 얼른 경비실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손전등을 끄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재빨리 잔발걸음을 걸었다. 그때였다.

"어이쿠~~ 이게 뭐야? 여기 땅이 얼었구먼.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네. 내일 일찍 일어나서 입주민한테 조심하라고 말해야겠다. 이제 들어가자~~ 으~~ 추워~"

정상태는 몸을 움츠리며 잔발걸음으로 경비실로 돌아왔다.

"에~~~ 에취!"

잠깐 사이에도 감기 기운이 느껴졌다. 얼른 다시 몸을 누이고 싶었다. 그러다 난로 화력을 높이려고 손을 뻗는 순간 좀 전에 등유통을 가져온다는 걸 깜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이구~~ 늙으면 몸이 고생이라더니.. 이런 것까지 깜박하고... 쯧쯧"

정상태는 마지못해 다시 옷을 입고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등유통이 있는 창고로 향했다. 컨테이너로 만든 조립식 창고는 경비실과 맨션 건물 사이에 있다. 정상태는 얼른 창고로 들어가 등유통을 찾으러 두리번거렸다. 두 개의 통을 발견하곤 흔들어 적게 들어있는 통을 들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서걱... 서걱"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 정상태는 조용히 몸을 돌려 창밖을 쳐다보았다. 잘 보이지 않았다.

"무슨 소리지? 도둑인가? 아님 멧돼지?"

이대로 나갔다간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천천히 등유통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나가도 되었다. 그러다 어둠에 눈이 적응할 때쯤 정상태는 보았다. 건물 구석으로 조용히 이동하는 붉은 눈을. 그리고 손에 든 물통을. 정상태는 순간 좀 전에 미끄러질 뻔한 땅이 한파로 얼어붙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상태는 침을 꿀꺽 삼키며 핸드폰을 열었다.

"찰칵! 찰칵!"

그렇게 큰 소리도 아니었지만 창고 안을 울리는 소리는 정상태에겐 자동차 경적소리만큼 크게 느껴졌다. 잠시 뒤, 다시 밖을 쳐다보니 적목 현상으로 붉게 보인 눈은 사라지고 없었다. 정상태는 등유통도 잊고 부랴부랴 경비실로 돌아와 문을 잠갔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왜 저런 짓을 하는 거야? 땅이 더 얼면 다치는 사람이 생길 텐데... 진짜 누가 다치길 바라고 저러는 건가? 이런 나쁜 놈 같으니.."

정상태는 누군지 얼굴을 자세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을 켜고 사진을 열었다. 정상태는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이게... 누구야? 2층 복도에 누가 있잖아? 이 사람은... 혹시 선아 엄마?"

사진 속 선아 엄마는 건물 2층 복도에 희망이를 안고 서서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물을 붓고 있는 붉은 눈을 향하고 있었으며 헝클어진 머리와 멍이 든 얼굴은 냉소를 머금고 있었다. 정상태는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다. 창고에 있는 제설용 소금을 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갔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다. 조금만 있다가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몸이나 녹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뜨끈한 이불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잠깐만 몸을 녹이고 곧 나갈 거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꽁꽁 언 땅에는 밤새 누워 얼어 죽어버린 선아 아빠의 시신을 표시한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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