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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May 10. 2024

스님과 도박업자

 부처님이 태어나신 네팔의 룸비니 동산에 한국 불교의 범종이 걸렸다. 십오 톤이 넘는 범종은 사천삼백 킬로미터 떨어진 룸비니 한국 공원의 종각에서 큰 울림소리를 냈다.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한 사람은 선묵혜자 스님이다. 2008년 스님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순례단과 함께 룸비니 동산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 당시 네팔은 내전 중이었는데 반군과 정군이 순례단을 위해 휴전을 선언했고 그것이 화해의 물꼬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네팔에서는 스님에게 국왕의 기념비가 세워질 땅을 백 년간 임대해 주었다. 스님은 그 땅에 한국 공원을 만들고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108 선혜 학교를 세웠다. 밥그릇 없이 종이에 점심을 받아 급식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식기를 사고, 한국에서 시주한 금액을 모아 우물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종을 본 적이 없기에 문에 매단 풍경 소리도 신기해했다. 또한 범종 소리는 네팔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와 자비를 선사했다. 스님과 순례단이 보여준 행동은 이타적이다. 그들이 네팔에 범종을 가져온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국경을 통과하지 못하고 발이 묶이거나 정해진 날짜에 도착하기 위해 이십 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운전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고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하지만 그들은 목적을 이루었고 타종식에선 벅차오르는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8개월 만에 삼억 원을 날린 청소년이 있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는 '바카라'라는 도박에 빠졌기 때문이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은 2022년에 '도박 문제 위험집단' 학생들이 십구만 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의 시작은 코로나19로 비대면 학습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접속하는 시간이 늘면서 청소년들은 불법 사이트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무료 웹툰 사이트나, 불법 영화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사이트에 게임 광고가 난무하다. 적은 돈을 배팅할 수 있고 캐시백을 많이 준다는 달콤한 속임수에 속아 넘어간 청소년들은 심심풀이로 한두 번 도박에 손을 댔다. 그러다 도박업체들이 짜놓은  계획에 따라 백만 원이라는 미끼를 물게 된 청소년들은 어른들보다 쉽게 도박의 늪에 빠졌다. 그들은 도박에 빠진 청소년들에게 사채를 빌려주고 돈을 독촉하기 시작하고 독촉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극단적인 선택도 했다. 90일이 지나면 다시 도박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해서 '90 일병'이라고 불리는 도박에 청소년을 끌어들인 건 돈에 눈이 먼 어른들이다. 상대의 불행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어른들은 베트남, 태국 등에 앞다투어 불법 도박장을 열고 24시간 프로그램을 돌리며 청소년들을 유혹했다. 한 달에 육천만 원도 벌어봤다고 말하는 업자의 말투에서 없어야 할 당당함이 느껴진다. 이런 사이트는 절대로 안 없어진다고, 찾는 사람들이 있으니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이라는 책임 회피성 발언은 사람들을 절망감에 빠지게 한다.

 스님과 도박업자, 누구의 삶이 옳은가? 누가 보아도 자비를 베푸는 스님의 삶이 옳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스님과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박업자와 같은 삶을 살지도 않는다. 우리는 알 수 없는 미래의 상황에 따라 스님의 삶을 살 수도 있고 도박업자의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옳은 삶을 살기 위해 경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이므로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을 존중받기 위해서는 타인의 삶도 존중해야 한다.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할 때 삶의 가치는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행복한 삶이 된다.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존중하는 선묵혜자 스님의 웃은 얼굴에 세상 모든 행복이 깃들어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행복은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므로 허름한 옷을 입는다거나 누추한 곳에 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도박업자처럼 지나치게 화려한 모습은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화려한 옷 뒤에 숨어서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에 전전긍긍하는 사람일수록 한없이 나약한 존재, 무능력한 존재인 것이다.

 현재의 선택은 과거에 대한 보상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과거보다 더 나은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제 몫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불공평하다고 느껴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 슬픔이 있어야 기쁨이 있고, 좌절이 있어야 성공이 있다. 슬픔이 분노로 이어지고, 좌절이 타인의 불행으로 바뀌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를 통해 자비와 인류애를 실천하는 스님이 보여준 모습은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큰 경종을 울린다. 룸비니 동산에 울려 퍼지는 저 종소리는 타인의 불행을 공감하지 못하고 물질 중독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깨우침의 소리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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