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시작됐다. 알록달록함이 짙은 푸름으로 바뀌는 봄과 여름의 사이. 어느덧 초여름이다. 지나간 봄을 생각해 본다. 그 봄에 피었던 꽃들을 생각해 본다.
나는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했다. 유복하게 자란 건 아니지만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꽃집에 가서 꽃을 살 줄 아는 아이였다. 가을이면가끔 자주색 소국을 한 다발 사서 아빠에게 내밀곤 했다. 아빠는 소년처럼 좋아했다. 나의 기질 중 낭만성은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게 분명하다.
대학생 때는 뜬금없이 플로리스트가 되어볼까 하는 마음에 휴학을하고 꽃을 배웠다.
(나는 조금 즉흥적인 면도 있다.)
수강 첫날 부케를 만들었다. 보랏빛 스타치스(흔히 '비닐꽃'이라고도 부른다.)와 같은 퍼플톤의 캄파눌라(종꽃)로 만든 귀여운 부케였다.
처음 만들고 느꼈던 뿌듯함 때문인지 부케 만들 때 항상 기분이 좋았다.
당연하게 새로운 꽃들을 많이 알게 됐다. 리시안셔스, 라넌큘러스, 수국, 알스트로메리아, 신비디움, 백일홍, 아네모네, 블루스타 등등. 사람이 가진 피부톤과 분위기를 계절에 빚대어 퍼스널컬러로 구분하듯이 꽃들도 계절성을 지니고 있다. 꽃잎이 얇고 하늘하늘한 꽃, 벨벳처럼 보송하고 묵직한 느낌의 꽃.
은은한 파스텔 톤의 꽃과 색이 짙고 선명한 꽃.
또 꽃송이가 큰 꽃과 잔잔한 꽃.
부케든 꽃꽂이든 꽃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건 결국 질감, 색상, 크기에 따라 어울리게 그룹을 지어주는 작업이다. 어울린다는 건 꼭 비슷한 걸 뜻하지는 않는다. 대비감을 잘 활용하면 화려하고 세련된 작품이 나온다.
그런데 나는 지금 플로리스트가 아니다.
꽃 만지는 일을 업으로 삼지는 못했다. 낭만과 손재주는 있었는데, 열정과 용기는 부족했는지도 모르겠다. 배운 재주는 친구들 결혼식마다 부케와 코르사주를 만들면서 뽐냈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할 사람은 다 해서 이제 만들 일이 없다. 누가 재혼이라도 하면 모를까.
그래도 나는 여전히 꽃을 좋아한다. 30년 만에 서울을 떠나 P시에 터를 잡고 살면서 야생화들을 보게 됐다. 나태주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쁜, 오래 보아야 예쁜 그 풀꽃들.
서울에 살 때도 제비꽃과 민들레 정도는 알았지만 이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작디작은 꽃들이 많았다.
아들이 다섯 살이었을 때 제비꽃을 집에다 심고 싶다고 했다. 꼭 흰 제비꽃이어야 한단다. (유전자의 힘이란...) 그래서 흰 제비꽃을 찾아서 캐는데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작으니까 그냥 쑥 뽑힐 거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비바람 맞아가며 야생에서 버티는 생명력을 얕봤다.
흰 제비꽃 사진이 없어 보라색으로 대신한다.
어느 날은 풀 속에서 청보랏빛 별모양 꽃을 보았다. 이게 얼마나 작냐면 쥐눈이콩보다도 작다.
내 맘대로 '별꽃'이라고 불렀는데, 찾아보니 이름이 '꽃마리'라고 한다. 이름도 어여쁘다.
꽃마리. 걸으면서도 놓치지 않은 2.0의 시력이 뿌듯하다.
민들레랑 약간 다르게 생겼지만 그래도 많이 닮았으니까 민들레 친척인가 보다 여겼던 이 꽃은 '고들빼기'다. 내가 좋아하는 고들빼기김치의 재료가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우는 거였다니. 신기하다.
고들빼기. 채소 좋아하는 다솜이가 냄새 맡는 이유가 있었다.
이 작고 하얀 꽃의 이름은 '봄맞이'다.
이름이 다했다.
사무실 내 책상에 봄을 데려왔다.
마지막으로 이건 꽃사과나무에 핀 꽃이다. 들꽃은 아니지만 피기 직전의 모양과 색이 너무 예뻐서 봄부터 쭉 프사로 설정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