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4개월의 첫 비행

아이와 함께 자라다

by ㅎㅈㅇ



네가 태어난 지 4개월쯤 돼서 나는 혼자서 너를 데리고 외할머니(나의 엄마) 집에 가기 위해 일본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 용감하고 무모했지.


집을 나서면서, 아기띠와 친구가 선물해 준 베이비슬링 중에 어떤 걸로 너를 안고 갈까 고민한 끝에 '안젤리나 졸리'가 사용해서 유명해진 슬링을 골랐어. 어리석었어.


나도 그걸 메고 '졸리'처럼 여유롭고 있어 보이게 일본에 입국할 줄 알았거든. 이 망상은 비행에 올라 이륙과 동시에 바사삭 부서지고 말았지만.




인천공항까지는 너희 아빠가 동행해 주었어. 출국 게이트에서 "운전 조심해. 도착해서 전화할게." 하며 인사하고, 출국심사를 마치고 비행기 탑승까지는 그런대로 순조로웠어.


나에게 일본은 워낙 자주 다녀서 해외 같지 않은 해외라서 부담이 전혀 없었거든. 2시간 반이면 도착하니 늘 타던 대로 이코노미석에 너를 데리고 앉았지.


그런데 이륙과 동시에 네가 울기 시작했어. 원래 울음 끝이 짧은 너였는데 그날은 예외였어. '태어난 지 4개월밖에 안 된 나를 감히 이런 걸 태웠어? 참지 않겠어.'라고 하듯이.


세상 모든 게 새롭고 낯선 너는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꼈을 거야. 게다가 좁은 좌석에서 너를 편히 안아주지도 못하니 얼마나 불편했겠니. 그렇게 너는 비행시간 내내 울고, 나는 내내 나의 잘못된 판단을 자책하고, 주변의 따가운 침묵에 주눅이 들어 너를 잘 달래지도 못했어.





누가 뭐라고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양 옆에 앉은 사람들이 가득 뿜어내는 짜증을 느끼며, 우는 너를 따라 나도 울고 싶었어.


그때 누군가 "어떡해~"라든지 "에고, 힘들겠다." 같은 말을 해줬더라면 용기를 얻어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니야. 각자 소중한 여행의 일부였을 텐데 우리가 시끄럽게 방해해 버렸으니 미안하지.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살아야 하는 성격인데(이것도 전적인 내 기준 안에서 이겠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상황에서 대처능력 빵점이 됐던 거야.

도착하기 직전에야 네가 울다 지쳤는지 잠이 들었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겨우 잠든 너를 조금이라도 더 재우고 싶어서 제일 끝에 내릴 생각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어.


아까 울었던 건 자기가 아니라는 냥 세상에서 제일 얌전한 얼굴을 하고 잠든 너를 보며,

일본인 아주머니가 "카와이가오싯떼루~(귀엽게 생겼어). 타이헨닷따네~(힘들었지?)" 하고 나를 위로해 주더라.







그 두 마디 일본말이 한껏 얼었던 26살 아기엄마의 마음을 녹여줬어. 그래도 그 비행기 안에는 어딘가에서 고생하고 있을 아기엄마를 걱정해 주는 따뜻한 마음도 있었구나 싶었어. 지금도 떠올리면 그 낭랑한 목소리와 억양이 귓가에 선명하게 맴돌아.


비행기에서 내려서도 너는 여러 번 놀라 울다 그치기를 반복했어. 그 와중에 이놈의 슬링은 왜 이렇게 불편한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외할머니를 만났다. 나의 엄마는 작은 내 체구에는 맞지 않아 안정감 없는 슬링을 보더니 쇼핑몰부터 들러서 아기를 편안하게 감싸주면서 몸에 착 감기는 아기띠를 사서 자기가 둘러멨고, 두 달 후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엔 항공권을 비즈니스 클래스로 바꿔주었단다.


엄마가 최고야.


네 덕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 비즈니스석은 타자마자 스튜어디스가 내 손에 짐이 들려있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받아서 옮겨주고, 하나하나 정성껏 챙겨주더라. 내 생애 돈으로 매겨지는 등급의 차이를 처음 체감한 순간이었어.


쾌적해서였는지, 두 번 만에 비행기가 익숙해진 건지, 두 달 사이에 큰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는 오는 동안에는 한 번도 울지 않았어.





너와 함께한 첫 비행은 애틋하게 느껴지는 기억 중에 하나란다. 지금이라면 더 잘 돌봐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서툴렀던 나의 육아가 새삼 또 미안해진다.


다리 털이 부숭부숭한 열일곱 살이 됐는데도 매일 와서 안기고 엄마 냄새 맡아서 아빠를 기겁하게 만드는 너를 오늘은 더 꼭 안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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