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쯤 포켓몬빵이 한창 유행하던 때였다. 중학생이었던 아들이 나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위치한 편의점에 물건이 들어오는 시간을 알려주면서 포켓몬빵을 사 오라는 것이었다. 그 정도쯤이야~ 엄마만 믿어.
그런데 시간 맞춰 가 보니 이미 2시간 전부터 기다린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오늘 들어오는 빵 두 개는 모두 그 아이 것이란다. 아쉬운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내향인 엄마는 용기 내어 물었다.
"아줌마 한 개만 양보해 주면 안 될까?"
1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엄마의 미션 실패 소식을 들은 아들이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뭐, 내일은 내가 미리 가서 기다려 봐야겠다."
다음 날 포켓몬빵 두 개는 아들의 차지가 됐다. 친구랑 한 개씩 나눌 거라며 좋아했다.
이게 뭐라고~
그런데 그때,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아들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형, 나 하나만 주면 안 돼?"
아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는 보면서 웃음이 났다. 우리 아들은 평소 인류애가 좀 넘치는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어... 어... 미안한데, 오늘 건 안 되고, 대신 다음번 들어올 때 내가 기다렸다가 사서 너 다 줄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다음번에 아들은 정말로 (그날 처음 본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를 위해 2시간 남짓을 기다려서 포켓몬빵을 사줬다. 그리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 빵에서 '뮤'라고 하는 귀한 '띠부씰'이 나왔다고 연락이 왔다.
아들은 "너 참 운이 좋다."며 축하해 줬다.
나눌 줄 아는 그 마음이 너무나 예쁘지만 평소에 용돈 떨어진 친구에게 돈을 주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만난 시각장애인에게 가진 걸 털어주기도 하는 것을 알기에 걱정이 됐다.
'남들 다 퍼주고 사는 건 아니겠지?'
아이를 키우는 건 기쁨과 걱정이 꼬인 새끼줄처럼 교차하는 일인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아들과 관련된 예전 일이 떠올랐다.
"어머니, 모난 돌이 정 맞아요."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교사와 상담하던 날이었다. 이 모난 돌은 우리 아들을 가리킨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늘 나부터 돌아보고 점검하는 성격답게 먼저 '내가 애를 잘못 키웠구나'하고 반성했다. 집에서 잘 지도하겠다고 말하고 돌아와서는 그제야 화도 났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10살짜리 자라고 있는 아이한테 모난 돌이라니, 정을 맞다니.
우리 아이는 꼬마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지하철 노선도를 그리거나 조선왕실 계보도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게임하는 걸 좋아했다. 농축해서 표현하자면 '덕후' 기질이 충만한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런 아이에게 짜인 시간표대로 수업받고 온통 규칙인 학교는 그리 매력적인 곳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아이의 그런 면을 유난히 부정적으로 본 듯하다. 그런 아이가 그 무렵 친구들과 이런저런 사소한 다툼이 생기니,
자신의 바운더리에서 벗어나 있는 얘는 '모난 돌'이 되고, 다툰 상대 아이들은 모난 돌을 다듬어 주는 '정'이 된 것이다. 지금은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는 걱정하는 나날을 보냈다. '사회성이 너무 떨어지나?' '가는 곳마다 미움 받으면서 살면 어떡하지?'
초등학교 1학년 때 차로 15분 정도 거리로 이사를 했지만 아이는 그새 정이 든 학교에 계속 다니고 싶어 했다. 그 마음을 존중해서 매일 차로 데려다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일을 계기로 아이를 설득해 집 앞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어머니, ○○이는 영재예요. 잘 키우셔야 해요."
전학 간 학교의 담임선생님이 해준 말이다. 칭찬에 맘껏 좋아하지도 못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모난 돌이 갑자기 영재가 됐으니. 새로운 담임교사는 우리 아이를 사회, 역사 등 배경지식이 풍부하고 똑똑한 아이로 평가했다.
'전학시키길 잘했다.' 생각하며, 이때는 아이도 나도 마음을 놓고 지낼 수 있었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아이는 어느 날엔 모난 돌이 되었다가 어느 날엔 영재도 되었다. 그래서 대가 곧지 못한 코스모스 같은 엄마는 울고 웃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런 평가들이 그저 개인의 주관과 취향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산란된 빛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음을.
최근에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사람의 관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제목 그대로 '어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사람이 편의를 위해 명명하고 구분 지은 것들이 진짜 본질이 아님을 생각하게 해 줬다.
'모난 돌'과 '영재'는 아이의 본질을 충분히 담은 구분이 될 수 있을까?
나 역시 아무리 엄마라고 해도 아이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다만 정성껏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