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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파리 Jul 28. 2024

과제의 영화평론化

ver.2


IV. 3가지 국가의 ‘일탈’ 영화

1.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프랑스는 자국 단독 자본의 영화뿐만 아니라 타국과 공동으로 제작한 영화를 포함해 모두 프랑스 영화라고 부른다. 5)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는 전형적인 프랑스식 전개방향과, 인간 욕구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프랑스 영화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은 ‘난해하다’, ‘이 해하기 어렵다’ 등 의견이 한국인에게 대부분인 감상일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프랑스 영화는 영화 종주국으로서 미학, 이론, 비평, 산업적 차원에서 세계 영화를 주도해 왔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초기영화의 발전 시기부터 ‘아방가 르드, ‘누벨바그’, ‘작가주의’ 등 영화사적으로 사조와 경향을 주도하며, 영화에 제 ‘7의 예술’이라는 지위를 부여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의 프랑스의 ‘사회적 영화’는 개인의 내 면적 삶 그리고 사회적 양상에서 상호작용을 담아내고, 개인적 정체성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 논문에서는 서술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사랑, 연인, 이별 등의 주제어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 영화 특유의 풀리지 않는 결말과 이해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관계들에 첫 번째 감상했을 때, 여느 프랑스 영화와 같이 심란 한 영화로 여겨졌다. 하지만 두 번째 보았을 때, 율리아의 복 잡한 심경이 영화 속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에 공감했다. ‘사랑’ 만의 일탈을 다루고자 했다면, 본 영화보다 파격적이고 에로틱한 영화를 선택했을 것이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에서는 ‘사랑’의 감정에 대한 일탈의 관점이 등장하나, 그보다 복잡한 주인공 율리아의 인생의 모든 선택에서 확실성이 없는 모습이 강하게 드러난다.


주인공은 의학을 전공하며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여 의사가 되는 과정 중, 심리학에 관한 우 연한 이끌림으로 의대를 포기하고 심리학과에 진학한다. 우연히 파티에서 만나 마음이 이끌린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후, 섹슈얼한 소재로 카툰을 그리는 남자에게 이끌려 연인이 되고, 함께 동거하기 시작한다. 가장 가까운 관계의 연인의 예술 활동을 보며 율리아는 사진을 찍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것은 단지 앞의 3챕터 정도의 내용뿐이다. 영화는 12챕터로 구성되고 있으며, 율리아의 심정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다음 챕터로 이동된다.

그녀의 인생의 관점은 ‘불확실성’이라는 말과 가장 어울린다. 타인의 영향을 받으나, 수동 적인 영향이 아닌 수많은 자아 성찰 끝, 본능에 따라 자신을 바꿔간다. 언제나 주변에 지지해 주는 부모님이 있으며, 변화무쌍한 주인공에게 “너 참 용기 있다, 너처럼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사람이 나는 정말 부러워” 등의 말을 해주는 주변인들의 영향도 자신 있게 변화할 수 있던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사진을 시작하여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해 예술가 애인과 함께 그 의 친분의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발자국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철학 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예술적으로 사유하지 못하는 이질적인 사람으로 취급된다. 또한 의 학과 심리학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전문적인 학위를 취득한 것이 아니기에 기준 미달 취급을 받는다.


과연 율리아는 자신의 본능적이고 즉흥적인 선택들이 자신을 그러한 미래에 가져다 두었을지 예상했을 것인가. 자신의 인생에서 계속해서 가졌던 ‘일탈’이 자신을 찾고자 한 과정이 되 었는가, 반대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는가.


본 영화를 프랑스 영화만의 특징이 강하게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선정하게 된 이유는 ‘일 탈’에 관한 주인공 율리아의 인식과 생활양상이 저자와 상당한 부분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본 글을 작성하며 ‘일탈’ 이란 단어를 얼마나 생각해 보았는가, 어떤 것이 나에게 ‘일탈’이었는가. 이와 같은 질문을 수없이 던졌다. 어린 나이 일지도 모를 서른이라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율 리아와 같이 선택의 지표는 대부분 그 당시의 본능이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 이에서 사유하며 어느덧 30년이라는 삶을 지냈다.‘안정적’인삶이란 더 이상존재할 수 없는 인생이라 못 박았다. 자아 성찰적으로 되돌아보면 율리아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 라보고, ‘저런 살지 말았으면 좋겠다’ 고 생각이 들었던 것 또한 자신의 투영된 모습이기 때 문이었다.


‘일탈’의 이미지는 ‘도피’에서 불확실한 삶의 방랑기로 해석된다. 과연 방랑적인 삶을 살아가는 율리아를 이성적이지 않다, 나이답지 못하다,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 와 같은 말들로 규 정할 수 있을 것인가.


2. 『리틀 포레스트』 1) 일본

이해를 돕기 위해 이하 일본판과 한국판으로 칭하기로 한다. 이 두 가지 영화를 선택한 이 유는 삶에서 새로운 일탈의 의미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드림, 서울 공화국과 같이 어떤 국가이던 산업 발달에 따라 청년세대의 도시이동화가 심화되고 있다. 일본 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어 그 자체로 ‘코모리’ 작은 숲 속이라는 지명에서 살고 있는 이치코는 어린 시절부터 시골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학창 시절 갑작스럽게 떠난 어머니의 부재로 시골생활을 떠나 도시에서의 삶을 살게 된다.


이치코의 삶은 평온하지만 속세와 완벽히 단절된 생활이었다. 구체적인 예를 내용에서 들 자면 우리가 흔히 먹는 초콜릿 페이스트 ‘누텔라’를 직접 만들며 “塗って食べるから、ヌッテラ”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 발음으로 하자면 ‘눗떼 타베루까라 눗테라’ 로 읽히 는 문장이다. 이는 “발라먹는 거니까 사투리로 누텔라야” 와 같이 이치코의 엄마는 이렇듯 말장난을 하며 속세의 물건들을 딸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읍내에서 슈퍼까지 자전거로 30분이 넘게 걸리는 마을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일본만의 말장난과 엄마만의 재치로 엄마는 이치코에게 속세의 ‘먹는 것’ 들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이치코는 도시에 살 기 시작하며 이와 같은 점을 알게 되고 엄마가 도대체 왜 그런 장난들을 했을까 생각한다.


약 10번 정도 본 영화를 보며 사유해 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마 엄마는 이미 도시에서의 삶에서 지쳐 자신만의 ‘일탈’로서 코모리에 이사를 온 것일지 모른다는 것. 영화에서는 자세한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더욱 시골 속에서의 삶이 평온하 면서도 쓸쓸하게 비추어진다. 이치코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한다. 이렇게 계속해서 코모리에서 살아도 되는 걸까, 나와 같이 돌아온 친구는 어떤 이유로 다시 돌아와 확신을 가지고 삶을 이어가는 것일까. 간혹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레벨의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이후 열 등감고 같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주인공 역시 자신과 같이 도시에서 코모리로 돌아왔으나, 확실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적응하려고 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분하다는 감정을 느낀다. 또 한 자급자족 이외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을 시키는 상사에게 ‘나는 내가 모든 것을 다 책임져 야만 해, 당신처럼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도 나를 위해 밥을 차려줄 사람도 하나 없이 나 혼자



서,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와 같은 대사에서 삶을 방향성을 찾고자 ‘일탈’ 로서 돌아온 고향에서도 또 다른 삶의 도피처와 일탈의 대상을 찾는다.

하지만 이치코는 도시에서의 삶에서 또한 완전한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코모리의 삶에 지 쳐 도시에서 생활하며 엄마의 장난과 같은 말들로 전혀 알지 못했던 음식들의 존재를 알게 된 다. 또한 고향에서는 당연히 밭에서 모든 채소가 있어 다양한 요리를 하던 것과 달리, 마트의 세일 상품, 편의점의 도시락 등, 고향의 밥상보다 색감이 단조로운 요리들로 밥을 때운다. 단 지 먹는 행동이 배고픔을 때우기 위한 수단이 됨에서, 자신과 맞지 않음을 깨닫고 재 일탈을 결심하는 것이 영화의 대표적 줄거리이다.

일본 판에서의 ‘일탈’은 결국 코모리 즉, 고향으로의 회귀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이점이 한국판과 가장 다른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도시로 다시 도피 한 뒤, 내가 있을 안정적인 곳은 역시 익숙한 곳이며, 이곳에서 평온하게 사는 삶이 ‘일탈’의 성 공 가치로 드러난다. 돈을 많이 벌어 화려한 삶을 사는 것, 남들이 우러러보는 직장에 다니 는 것은 일본 판에서의 ‘일탈’의 가치가 아니다. 내가 가장 마음 편한 곳, 언제나 같은 생활이 가능한 곳,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모두 자신만의 삶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영화의 결과이다.

일본판 영화감독 ‘모리 준이치’는 영화에 대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논했다.

 『산속에 살며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가는 일상에서, ‘먹는다는 행동을 통해 살아간다는 그 자체와 대면해 간다는 스토리는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생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나, ‘자 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해 취할 수 있다는 의미가 감춰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해당 만화를 영화화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원래 원작의 만화를 몇 년 전부터 읽어왔지만, 그때는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영화의 프 로듀서에게 나중에 함께 영화화시켜보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작은 ‘식’ 즉 먹는 것이 메인이며, 스토리에는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았기에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정성껏 촬영한다는 것 자체에서 새로운 분야의 영 화가 되지 않을까 굳건한 의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골생활이란, 실제로 살아보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즐거운 생활과 아름다운 경치 등 많은 좋은 점이 있겠지만, 그곳만의 독특한 인간관계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러나 사람과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현실은 실은 영화의 배경이 시 골이 아니더라도 모두의 생활 속에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모 두가 공감할 만한 생활감이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

마지막으로 시골에서의 생활 중 부족함이 있더라도 그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시 간을 알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의 인터뷰에도 드러나듯, 일본영화의 목적은 다수의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기승전결이 없이 진행되기에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야 끝까지 볼 수 있다는 특징도 살 펴볼 수 있다. 계속해서 농사를 짓는 모습, 자급자족을 위해 자연을 돌아다니며 ‘요리 레시피 영상처럼 만들고, 먹는 모습이 대부분인 영화에 지루함을 느끼는 이가 훨씬 많으리라 생각된 다.

하지만 일본판을 다루고자 했던 점은 스토리를 따라가는 한국영화와 달리 그저 진행되는 방식의 일본영화에서의 ‘일탈’의 모습을 통해, 왜 사람은 이렇게 까지 치열하게 살아야만 할까, ‘쉼 이란 어떻게 하는 것이었던가’ 등. 일탈의 이유가 되는 삶에서의 정답의 메시지를 스 스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2) 한국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 는 리메이크 작이지만, 임순례 감독에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스토 리의 틀만을 가져와 차용한 것으로, ‘한국 전원생활을 오롯이 담아낸 작품이다. 감독이 양평에 서 13년간 실제로 생활하고 있는 경험을 영화에 녹여 평범한 농촌의 사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자 한 작품이다. 8) 리메이크 작이나, 같은 스토리의 틀을 가지고 가기 때문에 ’식‘ 먹는 것에 한국판도 집중하고 있다. 영화 속 음식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감독은 실제 청년들이 자주 섭취 하는 편의점 음식의 질이 높아지고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음식’이라는 매체 속에 사랑과 정성이 들어가지 못한 요리와 멀어진 현실이 안타깝다고 논했다.


한국판은 일본과 다르게 회색도시의 삶을 먼저 보여준다. 어쩌면 한국에서 가장 흔하다는 취업준비생의 모습인 공무원 준비를 하는 주인공 ‘혜원’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한 학원에서 수십 명과 칠판만을 바라보며 수업을 듣는다. 그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 트를 하며 편의점의 ‘폐기’ 즉 유통기한이 지나 판매가 불가능한 상품들로 끼니를 때운다, 서 울에서의 주인공의 삶은 ‘살기 위해’ 먹고 자는 일상만을 반복한다. 이것이 21세기의 청년의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2024년 1월 기사를 살펴보면 높은 안정성으로 인기를 모았 던 9급 공무원의 채용 시험 경쟁률이 점점 하락하고 있다고는 하나, 24년 통계치는 ‘21.8:1’ 로 인구감소로 인해 수치는 낮아졌으나, 여전히 높은 경쟁률을 보여준다.9) 이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주인공 ‘혜원’은 임용고시에서 낙방한 것을 계기로 고향인 시골에 갑작스럽게 내려 온다. 본능적 ‘일탈’ 이자 ‘도피’ 이었다. 아무도 없는 시골집에 돌아와 서울에서와 다르게 얼 어붙은 밭에서 배추를 뽑아 소소한 배춧국을 끓여 밥을 해먹는 모습은, 폐기 도시락을 욱여넣 듯이 밥을 먹을 때보다 객관적으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맛’이 있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압박 받는 현실 속에서 도망쳐 나와 먹는 첫 끼니는 ‘일탈’의 맛이었을지 모른다.


한국판의 특징은 돌아온 바로 다음 날 나타난다. 주변 사람들이 혜원의 집을 찾아오기 시작 한다는 것.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밥을 해먹었을 때 불을 피운 연기로 동네 사람들은 혜원의 ‘돌아옴’을 인식한다.


일본판 또한 사람들은 등장한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에서는 큰 메시지를 담고 있 지 않다. 혜원은 돌아와 고향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기뻐하기도, 동네 사람들의 걱정의 목소리에 다시 한 번 풀죽기도 하며, 다시 시골에 돌아온 친구 ‘재하’와 이야 기 하며 내가 사는 삶에 대해 재고한다. 재하와의 대화에서는 이러한 문장이 있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본 저자 또한 이 질문을 듣고 깊은 사유를 하게 되었다. ‘바쁜’ 것은 부정적인가 긍정적인가. 나의 삶에서 ‘바쁜’삶을 나는 항상 마주해왔는가, 조금이 라도 바쁘지 않기 위해 ‘일탈’과 도피를 일삼아왔는지를 말이다.


영화의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재하가 혜원에게 그런 말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자 신도 혜원과 같은 삶의 ‘일탈’과 ‘도피’를 경험하며 사색의 기간을 가졌기 때문일 것 이라 말 한다. 겨울에서 다시 겨울을 맞이한 혜원은 자신의 삶을 충분히 사유하였다 생각했는지, 다시 한 번 자신의 목표와 성공을 위해 서울로 떠난다. 혜원에게 고향은 계속해서 머물 곳이 아닌, 생각 할 시간을 주는 ‘힐링’의 공간이자 엄마와의 추억이 있는 ‘추억’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혜원의 ‘일탈’은 다시 한 번 도전하는 도약이 되는 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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