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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May 27. 2021

내가 하루 종일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평생 없으리라

2018년 10월 3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새로웠던, 그렇지만 여태와 같은 기억의 입구가 잠긴다. 이번 자물쇠는 그가 나에게  단어만으로 심장을 후벼 파며 걸어 잠겼다. 아주 굳게, 그리고 고통과 같이.


여지껏처럼 내가 후일에 깨닫고 그것에서 슬픔을 발견하는 이별이 아니라, 너무나도 순수한 마음과 단어를 주어, 그 단어가 너무나 투명하게 마음을 비췄기에 눈물이 났다. 진심으로 미안했다. 뭔가를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굳은 석고처럼 나에게는 그저 깨뜨려져 버릴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겨졌고, 지금까지도 모두 그래 왔기 때문에 설령 그것이 아직 굳지 않았더라도 나는 손을 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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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생각해봤는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거 같아서 마음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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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다시 상대방을 불과 같은, 칼날과 같은 곳에 서서 생각하게 하는구나. 미안함을 전할 수 없게 되었지만. 또한 길을 잃었다. 나는 본래 길이 없는 땅 위를 서성이던 것인지, 내가 스스로 만든 미로에 갇힌 것인지 이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나는 항상 방황했고 그 끝에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의 흔적이 있었지만 그곳이 진정으로 사랑이 있던 자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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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하루 온종일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여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의 마음 또한 갈가리 찢는다. 애석하게도 너의 마음 또한 그랬겠지만. 자신일 거라고 생각하던 무엇인가가 자신이 아님을 스스로 안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하고 참혹한 마음인가. 내가 아는 그 어떤 단어보다 잔인하며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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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보면 내가 버린 어린아이의 일은 무엇인가. 아니, 나는 아직 장성한 사람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보고 들은 어른을 흉내 냈지만, 알게 된 건 어른이라고 해서 사랑의 파괴적이고 무언가를 앗아간다는 성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버린 것은 지금에 와서는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고, 나는 이제 이미 불타버린 것들을 찾아올 수 없다. 그 재마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사실 무엇이 불탔는지도 나는 알지 못하기에 무지함에 여전히 머무르고 있음을 재차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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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상태를 추구하겠다는 삶의 목표에 따르려 나는 수많은 것들을 버렸지만, 결국 버려진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것이 설령 타의에 의한 것이더라도 나는 혼자 남는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의 삶을 좋은 상태로 만들어 줄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단단하다고 여기던 그 껍데기는 결국 그저 단어 그대로 껍데기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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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가더라도 정 반대가 있고, 부정적이라고 생각되는 슬픔이라는 단어에도 좋은 슬픔 혹은 나쁜 슬픔이 있다고 여겨지기 마련인데, 나는 이제 무엇도 아닌 회색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새로이 사랑이라고 여겨지는 무언가를 찾으려 할지라도 내가 찾을 것은 그저 탐미하고 흥미로 점철되어 있을 것이고, 여태까지는 가식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정 사랑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알아채는 것임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기에. 나에게 사랑이라고 여겨지는 무언가는 사랑이 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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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가지고 싶어 안달 나지 않고, 그렇기에 진정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타나지 않는 삶이 연속되면서 나는 익숙해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항상성은 이미 매너리즘 속에 있다고 여겨지고 나 또한 그것에 아이러니하게도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익숙함은 나를 또 같은 길로 걷게 한다. 나는 헤엄치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 자신만만하게 물속으로 뛰어들지만 허우적대다 얼마 못가 잠기고 만다.

내가 물에 뜨는 법이라도 알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 다시. 하지만 나는 나를 바다에 데려다 놓을 마음이 이제 없다.


결국 내가 버린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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