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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May 30. 2021

전 주인의 기도가 잘 이루어진 것인지 의문이다 난

2018년 12월 29일

몽골에서는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 준단다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궁금하다

내 꼬리를 잘라 준 주인은 어떤 기도와 함께 나를 묻었을까

가만히 꼬리뼈를 만져 본다

나는 꼬리를 잃고 사람의 무엇을 었었나

거짓말할 때의 표정 같은 거

개보다 훨씬 길게 슬픔과 싸워야 할 시간 같은 거

개였을 때 나는 이것을 원했을까

사람이 된 나는 궁금하다

지평선 아래로 지는 붉은 태양과

그 자리에 떠오르는 은하수

양 떼를 몰고 초원을 달리던 바람의 속도를 잊고

또 고비사막의 밤을 잊고

그 밤보다 더 외로운 인생을 정말 바랐을까

꼬리가 있던 흔적을 더듬으며

모래언덕에 뒹굴고 있을 나의 꼬리를 생각한다

꼬리를 자른 주인의 슬픈 축복으로

나는 적어도 허무를 얻었으나

내 개의 꼬리는 어떡할까 생각한다


-슬픈 환생, 이운진


내가 지향하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결정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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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사라져서 버려지고 바래질 것들을 쫓는 것이 일상이 되어있을 무렵, 나는 내가 오래전에 생각했던 것을 다시 상자 속에서 꺼내보았다. 그 오래 전의 시. 그 무렵의 나는 얼마나 열망했는가. 정말 많은 것들을 손에 쥐고자 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 손에 어떤 것이 쥐어져 있는지, 그것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스스로 설명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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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개울가에 던져진 조약돌처럼. 그저 휩쓸리고 뒤섞인 사람이 되어간다. 내 손에 쥐어진 것들 또한 마찬가지리라. 흙탕물 속의 무언가처럼 무작위로 손에 쥐어진 것은 나를 허탈하게 했다. 너무나도 빛바래고 의미가 없는 이 색깔과 모양을 보라.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것을 탐하고자 했던 마음의 결말이 결국 나 자신조차 그렇게 만들지 못하는 두 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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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힘들어하는 이 시간이, 아니 내가 힘들어하는 것의 일부일지도 모르는 이 시간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순간조차 나를 찢는다. 이보다 더한 아픔을 내가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아니다. 사랑을 몰랐기에 아픔을 몰랐고 아픔을 몰랐기에, 상처를 몰랐기에 낫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다. 정작 드러난 나의 머리에 삶은 총구를 그대로 겨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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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추는 거울들은 계속해서 바뀌었지만 결국 나는 거울 속의 모습에 미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아픈 이유는 그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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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프다. 정말 힘들다. 차라리 걸어서 나아갈 수 있었다면. 움직일 수 조차 없게 하는 사슬들은 나를 더욱 짓누른다. 너는 어디에 있는가. 아름다움을 지향하던 나는 어디로 가버렸나. 어리석게도 결국 내가 살아야 하는 오늘은 어제를 헐값에 팔아넘긴 책임이요, 책임을 사랑하고자 했던 나는 오늘도 스스로를 다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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