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1일
어렸을 때는 우리 집에 정수기가 없었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아 바로 마실 수 있고, 시원한 물이 나오는 정수기가 경이롭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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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그 대신 물을 보리차로 끓여먹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의 어린 나는 보리차를 끓이면 그 물을 다시 차갑게 해야 하고 누군가 차갑게 하지 않으면 누구도 시원한 보리차를 마실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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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잡곡밥이 흰쌀밥보다 영양소가 훨씬 많지만 보기에도 맛도 흰쌀밥이 훨씬 좋은 것처럼 보리차와 생수에도 그런 느낌을 투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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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날 수돗물을 정수물로 바꿔주는 장치를 수도꼭지에 설치하게 됐는데 색만 투명하게 바뀌었지 이것도 누군가 냉장고에 넣어놓지 않으면 결국 미지근한 물로 갈증을 달래야 하는 것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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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삼다수를 페트로 사 먹기도 하고 하다가 결국 얼음도 나오고 시원한 물도 나오고 그리고 이제는 냉장고에 넣을 필요가 없는 일반 정수도 나오는 기능이 있는 냉장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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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보리차 티백을 사 왔다. 2L에 하나씩 넣어서 끓이라고 했다. 지금은 다 식지가 않아서 하늘보리 사 온걸 먼저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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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달아오른 것을 차갑게 식히고, 그 차가워진 것을 얼리는 것은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먼저 뜨거워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없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식어가는 무언가를 바라볼 때. 그리고 얼릴 수도, 차갑게 만들 수도 없이 그저 그런 온도에 둘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달아오를 수 있었던 것을, 차가워질 수 있었던 것을. 끝에는 얼어버릴 수도 있던 것의 가능성을 땅바닥에 쏟아부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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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와 끓인 보리차는 지금 부엌에 있는 주전자 안에서 식어가고 있다. 지금 당장 차갑게 먹으려면 얼음을 많이 넣고도 꽤나 기다려야 한다. 얼음도 없고, 냉장고도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어쩌면 이제 나는 잊은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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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쭉한 초록색 지하철 승차권은 사라지고, 보라색 천원도, 항상 켜져 있던 생활관 TV도 이제 예전 이야기가 됐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