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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Jul 22. 2021

마음과 다르게 종이는 42번 접으면 달에 갈 수 있다.

2019년 11월 26일과 2019년 12월 6일



그날 눈사람은   욕조에 누워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살아야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없었다. 죽어야  이유도 없었고  살아야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눈사람 자살 사건 / 달아실, 2019      



몇 주 정도 됐나, 부쩍 눈이 잘 안 보여. 처음 안경을 쓴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 23살의 여름에 했던 라식은 10년을 잊게 했다. 하지만 요 몇 주는 10년을 떠올리게 한다. 시력은 컨디션의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눈이 건조하고 동공이 커 빛 번짐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수시로 추켜올리고 김서리 던 안경을. 군대에서마저 나를 매일 불편하게 했던 유리와 플라스틱을 기억 속에서 1년 동안 깨끗하게 지웠다. 삼십 분 만에 좋아졌던 내 시력을 남기고.

미술학원에 간 첫날. 내가 처음 배운 것은 연필을 깎는 법이었다. 신입생이었던 나를 빼고 친구들은 모두 그날의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홀로 쓰레기통 앞에 서서 어설프게 칼을 잡고 나무와 흑연을 함께 뭉텅이로 떨궈내던 손이 학원의 첫 기억이다.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마지막 기억엔 버티는 것이 남았다. 뭐든지 버티는 거. 우두커니

OO는 내게 지쳐 보인다고 말했다. 희수는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지 가장 먼저 눈치챈다. 손에 쥔 사탕을 놓아야 빠지는 항아리 속 손처럼 놓아버리는 것은 무언가를 잃게 만든 뒤에야 자유를 내준다. 잃어버림에서 오는 슬픔은 여기저기 쏘다닌다. 그렇게 삶의 저울은 다시 평행한다.

고장 난 나침반을 가지고 살아감과 같다. 항상 잘못된 장소에 데려다주는 지침. 그게 내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것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버거운 일들은 항상 쏟아지며 내려오곤 한다. 머리 위에 끼얹고 나면 머리카락이 얼굴에 착 하고 달라붙는다. 눈을 비비며 머리를 넘겨야 다시 시야가 또렷해진다. 어찌 내 속눈썹에 걸린 그들을 모른척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소중해 가끔씩만 펴보던 책의 표지의 가장자리는 이제 다 닳아 낡아버렸다. 가끔도 그 시간이 유한히 늘어지면 영원이 되는 걸까 싶은 마음에. 책은 항상 두 권이 만들어지니까 언젠가 한 번쯤은 낡은 내 것 말고 새 책을 볼 수 있을 성싶어 들락날락 대던 방의 문지방이 오늘따라 높다.

쓸데없는 곳에 힘쓰지 않기로 해. 새고 있는 에너지를 아깝게 생각하기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면 좋은 것들이 사실은 그저 오늘의 나 혹은 한 발자국 앞,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곳까지만 보장해준다고 느껴져.

슬픔을 있는 그대로 토해내는 사람을 보았다. 그건 견고해 보이던 성이 무너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과 같다. 슬픔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우리는 그때 그것을 들어 올릴 수 있을까,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은 점점 진리로. 우산을 파는 아들과 짚신을 파는 아들은 나의 마음속에 살고 그 동네의 날씨는 누가 결정하고 있는지,

그토록 기다리던 사랑이 찾아오면 좋을까 싶다가도 나는 이제 썩 좋을 거 같다는 느낌은 안 들어. 두 걸음 나아갈 곳에 한 걸음만 내딛고, 손 뻗어 닿을 것도 닿지 못하게 떨어뜨려 놓는 일 말이야. 자신 없으면 하지 말라는 말을 무시한 나는 후회를 잔뜩 사 온 자신이 되어, 하지 말걸 그랬네. 무심하게 하는 일이 참 많아. 무심결에 양말을 신은 채로 화장실에 들어가면 발 끝은 왜 이리도 잘 젖어버리는지.

좋아하는 걸 만드는 일이 있다고 나는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이 사람의 어떤 것이 좋고 어디가 좋은지 상고하지 않으면 안 됐다. 여행지를 정하고 그 여행지가 나온 영화를 보며 즐거운 상상 속에 뛰어들듯이 주객전도 되어버린 나는 좋아하는 마음도 역설로서 만들어보려 했지만 석고상은 절대로 살아나지 않는다.

항상 난처하게 만들어서 미안. 내 마음은 항상 사람을 난처하게 해, 도착이 빠르던 느리던 결국 정지선을 넘지 않는 것이 규칙이니, 이제 상자에서 꺼내는 일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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