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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Sep 26. 2021

잠긴 곳의 열쇠를 잃어버리면 다들 어떻게 하세요?

2020년 2월 8일


일주일, 이 주가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몸무게가 5킬로나 빠졌다. 전역한 이후 이렇게 눈에 띄게 큰 체중 변화는 처음이다. 내 삶은 항상 이런 식이다. 내가 무언가 공들여서 쌓아놓은 것들을 그들은 장난, 혹은 나보다는 가벼운 이유를 대며 와서 무너뜨려버린다. 쇠해진 몸에 기력이 없는 이유는 단순히 체중 때문이라고 여길 수는 없다.


운동도 손에 잡힐리가 없어 헬스장 회원권을 정지시켰다. 오늘이 다시 갈 수 있는 첫날이지만 아직도 운동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렇게 열심히 했었는데도.


천식약을 먹은 후에 자주 게워낸 음식들은  이후의 식사들도 어렵게 만들었다. 식욕은 부진했고 노력으로 만든 무언가들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아쉬운 마음도 누군가 죽였다.


정신은 몸을 지배한다. 나를 지켜주던 생각을 붙잡아 철창에 가두고, 마음에 불을 지핀다. 그럼 마음에 숨었던 진심들이 검은 연기를 뚫고 뛰쳐나온다. 그 와중 신발은 신지 못해도 손엔 각자 가장 소중히 여기던 것들을 집어 들고.


안구건조증이 언제나 눈이 건조한 것이 아닌 간헐적 상태의 변화인 것처럼 지금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저 발걸음이 향하는 곳을 도통 짐작도, 통제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손이 닿는 곳까지는 울타리를 지어야 했다.


신기하게도 병원에서 꽤 오래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고 나왔는데도 해가 나와있었다. 당연히 깜깜한 밤에 되어있을 줄로 알았는데. 해는 자기 할 일을 마치는구나. 매일. 매번. 언제나. 내 질식은 늘어놓아진 2시간가량의 문장과 몇 알의 약물로 숨구멍을 트는 듯했다. 뭐가 되었든 간에 지키던 것은 또 한 번 끝을 맞이한 것이다. 차라리 죄책감이라도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결국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음을 재차 증명한 꼴이 되었다.


용기를 낸 마지막 방법이었으나, 사실은 아픈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일이 무서웠다. 다들 마음의 감기니 흔한 일이니 하며 떠들어 대지만, 그런 팔자 좋은 소리가 들릴 리가 있나.


내가 받아 든 자그마한 것들의 뒤엔 우울증이니 공황장애니 하는 설명들이 따라붙었다. 의사 선생님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크다고 말해줬다. 그것이 나의 24년 간의, 근 1달의. 그리고 내가 선생님에게 두 시간가량 내뱉었던 단어들에 대한 진단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내 삶의 불편들은 사실 불안함이나 초조함이 가져다준 장애의 일부였다. 가끔 들었던 따끔따끔한 느낌도. 내장에 스크루를 돌리는 듯한 느낌의 역한 감정도. 축 늘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하루도. 내 목덜미 뒤에 쑤셔 박는 예리한 바늘의 차가움도.


내가 가장 힘들 때, 나를 나락으로 밀쳐 떨어뜨린 사람. 절벽에서 내민 손을 가차 없이 밟아버린 사람. 떠오르는 얼굴들이 내가 한 때 사랑했던 것들이라 차마 볼 수 없어서 이내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받아온 약을 먹고 잠자리에 누운 첫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별거 아니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경구제가 나를 어떤 곳으로 데려다 줄지 몰랐기에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은 날이기도 했다. 이런 나를 걱정해주고,


불안함은 내가 잠든 사이에 태울 것을 모조리 불사른 뒤 사그라들고, 집착은 턱 바로 밑에서 차오르기를 멈추었다. 신기하게도 약을 먹고 맞이하는 아침에는 잡생각의 촛불을 누군가 뚜껑 닫아 끈다. 확 오르려던 불이 힘을 잃고 사그라든다. 어떤 매개체의 도움 없이도 이 상태에 이르는 사람을 건강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제 매일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길인지 모르는 것이다. 침대 구석에 몸을 웅크려보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나기 전 웅크리고 있었을 텐데. 누군가는 목과 어깨를 쭉 펴고 나아가는데, 나는 다시 웅크려버렸다. 이제는 모체의 보호도 없다.


도망치기를 간절히 바라도,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다는 사실. 흙 계단에 걸터앉아 진달래를 그리던 2006년의 그 아이도 안다. 좀 더 일찌감치 내 어디가 아프다고 누구한테라도 말할 걸 그랬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약을 발랐어야 했으니까.


'날개가 있는데 날면 좀 어떤가.'


허나, 언젠가. 그리고 누군가. 날개를 묶여 잠겨버렸고 자물쇠의 열쇠는 저 광활한 대양에 버려졌다. 잠금을 풀기 위해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었으나 나는 절대 채울 수 없었다. 어떤 것에 대해서 욕심을 콩알만큼이라도 갖는 순간. 나는 그나마 가졌던 것도 모조리 빼앗겨 잃어버리게 되어버리니까. 훨훨 날아가 버려진 위치를 찾을 수 있더라도 저 싶은 심해 속 열쇠는 이미 나의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


애증. 애증, 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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