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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Sep 21. 2021

시의성에 절대 부합하지 않는 얄궂은 자존심의 가치

2020년 2월 2일


겨를이 없다. 겨를이 없어,


밑 빠진 독은 영영 채워지지 않지만, 독을 물속에 넣어둔다면 영원히 빌 일은 없다. 독이 다 잠길만큼의 깊은 물을 함께 마련해주었으면 해. 빠뜨렸을 때 넘치는 것들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하지만 손으로 막아보려 한들 손 틈은 왜 이렇게도 넓고 야속한지. 줄줄 줄,


쉽게 얻은 사랑을 어렵게 잃으려 하다니. 세상에 뿌려진 노력에 대한 모독이다. 돈으로 양반 행세를 할 수는 있었지만 그 본질은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했던 상인들. 나는 시대의 흐름으로 평평해진 땅 위에서 걷지만, 묘하게 울퉁불퉁한 그 바닥은 발목을 삐게 한다. 어디서 접질렸는지 알 수 없어서 요철은 보완이 되지 않고 있다.


잠을 자면 우리 몸이 뇌를 자체적으로 씻는다는데 도통 이 배관은 뚫릴 생각을 하지 않고, 이유가 뭔지 알아도 아무런 조치 없이 보내는 이 날들. 집 현관을 나설 때 아직 찬 바람이 스치면 날이 어서 따뜻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따릉이를 타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나던 한강 길이 나에게는 큰 위로였음으로.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린 소년스러움. 풍기는 향이 달라진 것에 대한 인지는 잃어버림에 대한 확증을 주었다.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해 지갑 채 갖다 댄 교통카드처럼. 없을 때의 당혹감. 누리던 것들은 나의 일부분으로 귀속되지는 않았으나 개인으로의 역할을 철저히 다 하고 있었다.


내려야 하는 정류장을 지나치면, 혹은 덜 가서 내리면. 하차벨을 누르지 못하면 드러나는 일들을 마주해야 한다. 기꺼운 책임이 될 뻔도 한 귀찮은 일이라고 이름 짓겠다. 한 때 사랑했던 이들을 위해서라도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 그리고 내가 앞으로 사랑할 사람들을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생각들은 목적지를 잃고 난 후에야 미도달 된 거리를 걷고 지나친 시간을 되돌린다.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세상에 하나쯤은 있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영수증도 잃어버린 지독한 짝사랑이 그 대상에 대한 진심을 증명하고 나를 살게 했던 무언의 소음이었듯이.


보통의 싸움도, 다툼도. 건강한 관계에서나 성립된다는 사실은 서글픔 위에 무게를 더한다. 소중히 감싸 쥔 것의 폭발을 두 손은 견딜 수 있으려나, 설명서를 모조리 숙지하고 정확한 곳에 부품을 끼워도 이 제품은 제대로 완성이 되질 않는다. 나의 삶에는 항상 해석의 문제가 뒤따른다. 혹은 해석의 부재가,


지금 가장 사랑하는 네가, 시간이 지나면 내가 가장 미워할 대상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젠 거의 확증. 지금의 넌 나를 강하게 하는 차디찬 금속. 하지만 때가 오면 쓸모없는 고철덩이가 되어 예쁜 쓰레기로의 역할을 할 것이다. 예쁜 쓰레기, 2019년의 대명사로 내 마음속에서.


시간을 작게 쪼갠 후 모아내야 시간이 나는 삶이 오고 있다. 주말엔 꼭 쉬어야 하고, 잠을 자도 편치 않고 얼마나 자던지 깨어났을 때 풀리지 않는 피로에 절망하며 싸워나가는 아침들이.


사진을 잘 찍는 편인 거 같아요. 무엇의 어디가 어떻게 아름다운지 알아볼 수 있어요. 페이를 받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그릴 줄 압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좋은 말로, 알고 있는 단어로 세련되게 풀어낼 줄 압니다. 다른 사람 눈에도 그렇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본디 보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니까요. 위로를 잘 못하지만 타인과의 대화도 상식의 범주 안에서는 나름대로 즐겁게 할 수 있어요. 같은 중력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이제는 휴지조각으로도 못 쓸 자존심의 값어치를 쥔 손은 도통 펴질 줄을 모른다. 전완을 잘라내어 주길. 쥐는 일은 그래야 멈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완고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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