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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Oct 11. 2021

묶어둔 줄이 오히려 연을 날 수 있게 했을 줄이야.

2020년 2월 22일


미안해, 하고 과거의 너에게 간절히 읍소하며.


is it love,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 정말? 스스로 자문한 적 없었다. 진짜 좋아했으니까. 근데 이제는 아냐. 왜냐하면,


왜냐하면 시간이 흐른 뒤에 알았기 때문에. 너에게 쏟아졌던 사랑을. 어여쁘게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후. 하고 불게 되는 그 모음을. 발치에 핀 줄도 모르고 지나친 계절을.


간절하게 원하고 바라고 빌고,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지구가 멸망하길, 네가. 혹은 누가 죽어버리길. 내일 아침이 밝지 않기를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도 지구는 개의치 않은 채 돌고, 나는 아직도 죽지 못했고, 어김없이 창틀에는 해가 비춘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내가 아는 단어가 적어서, 혹은 그 뒷페이지를 읽지 않은 사람에게 어찌, 바다를 모르는 이에게 그저 큰 호수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 이는 바다를 보아도 호수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꿈을 꾸지 않는다. 잠에 깊게 드니까. 불안함조차 잠든 틈에 조용히 다가가 심연의 바닥을 손 끝으로 슬쩍 훔쳤을 때 어떤 것이 묻어 나왔는지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었다. 남의 꿈에 나와서 울기도 했단다. 어차피 그 사람의 꿈이니 해석은 그 이가 알아서 해야 하겠지만, 가습기는 꾸준히 방의 습도를 올린다. 뭐 워낙 건조했었으니 아직은 괜찮아.


댕강, 어떤 일들은 그 사실 자체가 너무도 무거워 내 발목을 잘라갔다. 연의 연줄을 끊은 것은 나의 호기였으나 연은 곤두박질 쳐진 땅 위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있을 때 비로소 날게 해 주는, 그래서 대척의 관념조차 만들지 않는 것. 배려는 그랬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한적함을 만들며.


사용법을 완전히 숙지했다고 생각할 때 즈음. 결함과 수정되었으면 하는 사항이 눈에 띄었다. 항상 쥐고 있는 전화기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관성이나 다름없었다. 계속 진행하던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힘. 나는 아직 제동거리 안에 있다. 조심해야 한다고 상기했다.


양말이 한 짝씩 없어지는 것이 싫어서 같은 브랜드의 같은 색 양말만 잔뜩 샀던 시기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매일 짝을 맞추어 신을 수 있는 양말은 서랍 속에 가득했고. 홀수로 존재하고 때로는 짝수로 존재했다. 일일이 세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내가 취하고자 했던 느낌인 생각하지 않고 집어 들어도 알맞은 짝을 찾는 일은 바쁜 아침의 당혹감을 지우고자 했던 것이므로.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내가 고른 양말에게는 조건 없는 애정을 줄 수 있었나 봐.


종일 손을 씻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찝찝함이 생긴다. 끈적임도 아니고 텁텁함도 아니고. 자기 전의 베개 위 머릿속은 하루를 버틴 손과 비슷해진다. 한 번 정도는 떨어져 땅바닥에 구른 사탕처럼 느껴지는 거리낌을 나조차 들여다보지 못하게 커튼을 쳐주었다. 대강 짐작하건대 내 생각들이 많아져 병목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배려는 그랬다.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구는 의연함.


내가 카톡을 쌓아두기 시작한 심리처럼. 하나, 둘. 그저 확인하고 지나치고 나를 정말로 필요로 하는 중요한 일이라면 텍스트가 아닌 구두로 전하겠지 싶어 몇 단어씩 밀쳐두었던 것들은 때론 관계의 단절이나,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하게 했다. 애초에 세상에 없던 소통 수단이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이런 메신저 하나에도 마음이 상하는 참 여린 객체들이다 우린, 이런 것을 입 밖으로 내야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느껴. 얼마나 사랑이 싸구려가 됐으면 그럴까 싶어서.


너는 이제 타인이 되어버린 다. 난 그토록 바라던 객관화를 주도적으로 이루지 못했다. 답안지를 겨우 얻어서 어제의, 작년의 내가 타인이 되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뿐이다. 내가 흥미가 생길 때 올라가는 한쪽 입꼬리의 미소를 발견해주길, 웃음 나는 그 당시에는 사과할 필요도 없고 물음표를 붙여 자문할 필요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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