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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Oct 14. 2021

소중한 일도 의외로 쉽게 잊어버린다.

2020년 2월 28일

a to A, 혹은 A to a


체중계가 보여 올라서 봤다. 어김없이 또 몸무게가 줄어있었다.


무겁다. 너무 무거워. 진짜 이제는 안된다. 너무 무겁다. 정말 너무너무 무겁다. 차라리 깔려 죽고, 이 짐을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깥에 위험한 바이러스가 창궐해 나라가 들썩일 때도, 누군가 그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검은 수면 밑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가시적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해보지 않은 너희들에게, 젖어보지 않은 너희들에게 내가 왜 설명을 해야 하는지.


과거의 나의 잘못과 책임은 현재의 내가 모조리 지고 있다. 한 달. 기대 이상으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신발이 젖지 않게 우산을 잘 씌워 주었지만. 누누이 들던 생각처럼 우산으로 폭풍우를 막을 수는 없는 법. 나는 아직 마음 놓고 들어가 편히 쉴 수 있는 집 따위는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다.


항불안제가 아무리 불안을 찍어 누른다고 해고, 나우는 재채기를 누가 막겠는가. 킁, 하고 티 나게 새어 나오는 바람을 누가 눈치채지 못하겠는가.


내가 무언가를 많이 얻어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뒤뚱뒤뚱 걸어갈 때, 발견하게 된다. 그 짐들을 모조리 옆의 강가에 버리고 진정 떨어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누군가가 강가로 뛰어드는 것을 붙들러 달려가야만 하는 것을. 그리고 내가 강에 흘려보낸 것을 운이 좋아 강가에서 발견하는 일도 있었으니 대개는 다 잃어 기억도 희미해져 갔다는 것을. 그 일련의 과정은 너무나도 익숙하고 n년 단위로 일어나는 이벤트로 자리매김하는 수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부여한 것을 반납할 날이 된 것. 그쯤에서 생각을 멈췄다. 어차피 내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니 휩쓸려 가는 수밖에.


가을이 되면 낙엽이 다 떨어져 누군가는 쓸어 길을 깨끗이 만들어야 한다. 나는 때로는 벚꽃을 보고 그 연분홍빛 향취에 기뻐했다. 즐거움 뒤에는 즐겁지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음은 필연. 돈을 버는 일은 소비를 전제로 한 행위. 식사를 하면 당연히 나오는 설거지 거리들. 간편하고 쉽게 얻고, 사용할 수 있었던 것들에서는 유독 많은 비율로 나오던 즐겁지 않은 것들. 쓰레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 그렇다고 추억으로 가지고 있기엔 잡동사니에 가까운 것들. 이제는 길이 걸울 수 없을 만큼 비좁아져 쓸어내야 할 때가 된 것이라고.


나는 두 명일 수 없고 깨뜨릴 수 없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왼쪽을 보면서 오른쪽을 보는 방법을 거울을 통해서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오로지 나만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어딜 바라볼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의 연속. 내가 계속 고개를 저어대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 사람들. 내가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까.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간다. 마음속 노를 쥔 수많은 각자들. 나 자신이지만 내가 아닌 것. 적당하지 못한 곳으로 배를 몬 각자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하면 도망쳐버린다. 거울을 보고 하는 가위바위보. 영원히 지는 일도 이기는 일도 없다.


나에게 감정이라는 자원은 고갈된 것. 명맥이 끊긴 기술., 문을 닫아버린 재련소처럼 그저 어렴풋이 어깨너머로 어설프게 따라 하던 방식만이 남아있는 채로. 더 이상 감정이라는 광물은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아직 내가 오만했을 때. 잘 세공해서 건네주었던 감정들은 곳곳에 퍼져있고 지금의 나는 그 형태를 따라 흉내만 내는 꼭두각시나 허수아비 정도.


잃어버린 높은 이상, 너무 높으니 있는 양에 만족하지 못하는 일. 과거의 자신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고 있는 나. 본인 스스로에게 부여한 기대들은 모두 과거의 내가 부과한 것.


높이, 높이. 해가 너무 뜨거워 날개가 녹다. 어디까지 추락하는지 지켜보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잠시 깜빡했다.


아래로,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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