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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Nov 13. 2021

나쁜 사람은 적고 나쁜 상황은 많다.

2020년 3월 26일

"This seems to be on purpose"


막연히 그리움에 파묻히는 밤, 자기도 묻혀버릴까 싶어 도움을 청하는 내 손도 뒤로하고 잠마저 달아나는 밤. 괴로운 일이다. 하품을 하도 해대서 턱이 욱신거리고 고인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채워진 눈꺼풀은 슬픔도 뭣도 아닌 채로 주르륵 연신 흘러내린다. 아직 편히 몸을 누일 자격이 스스로 없다고 느끼는 일. 다 스스로 높이 던져 올려 닿지 않는 곳까지 올려둔 눈높이 때문이다.


믿음직한 것들이 주는 확신. 사과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확신을 경험한 후에는 가짜를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가짜는 마치 쇠독처럼 올라서 팔에, 그리고 목에 가볍게 걸쳐둘 수도 없게 한다. 답을 아는 나에게는 정답에 근접한 너희 답은 전혀 맞지 않는 오답으로 보일뿐, 차선으로 삶을 살아가는 건 내 방식이 아니었다. 은을 걸어두었던 목에 어찌 싸구려 철조각을 걸겠는가. 그런데도 자신은 떨어지지 않는 사과라며 재잘대던 너는 허풍선이.


작년 말, 아니 혹은 그 이전부터 메모 앱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방치되었다. 평소, 이젠 평소라는 말보다 과거라는 말이 어울리게 된 시간 속에는 글을 쓰고, 할 일을 적고. 너희에게 전했던 사랑들도 알맞은 책꽂이에 제 때 꽂아두던 내가 있었다. 그러나 쌓이고 쌓인 감정의 더미는 정말 더미가 되었다. 쌓인 것들에 가려진 시선이, 막혀버린 목소리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때. 그때부터 망각은 자신의 덩치를 불린다. 넌 역시나 미워함의 단어가 내리는 종말을 맞는구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생각해보면 변하는 것은 사랑밖에 없었다. 나를 있는 힘껏 물어뜯었지만 넌 악어가 아니었고, 통째로 집어삼킬 수도 없던 너는 아나콘다가 아니었다. 하지만 미약하게나마 네가 물어뜯어간 곳, 너에게 삼켜진 일부분의 사소한 나는 너를 잃었으니 함께 잃었다고 말할 수밖에.


그렇게 어찌어찌 찾을 수 없는 것을 찾아 헤매다가 당도한 곳에 주저앉았다. 차라리 각자의 침대를 끌고 나와서 드러누운 채로 만나면 안 될까 할 정도로 관계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 끊겼을 때 비로소 다리가 풀렸다. 풀썩, 그때였다. 나를 미로 속에 가두었던 빛깔 좋았던 말의 의미는 급격히 퇴색되었다.


"Love will be complete me"


하지만 아직  번도 완결되지 못한 .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없는 공룡처럼 대충  완성품을 가늠해보는 시간. 지인이 자신의 글을 내어주었다. 주류와 아류, 강한 신념과 정신병, 소수의 의견이 다수로 스며드는 . , 사실 나는 속은 것은 아닐까. 불현듯 기어코 헤엄쳐 겨우 도착한 뭍이  의지가 아닌 조류의 의지가 결정한 도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찾던 완결의 무결성을 대체 누가 증명할까 싶은 생각에.


하지만 키친 테이블 노블이 얼마나 많은 주부들에게 안정을,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는지. 그런 끄적대던 이야기가 가져오는 힘에 들리워진채 사는 나. 가치중립적인 것들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다지만 나에겐 종종 그렇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나의 손에 쥐어진 아름다움은 항상 깊은 고통을 수반했지만 잊을 수 없다. 깊음을 잊으면 그 미도 잃는 느낌이 들어서.


사랑에 푹 빠진 이야기는 대부분 뻔했고 예상대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질투는 나의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순대보다 내장 부속물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처럼 사실 사랑보다는 곁들여 나오는 질투를 하고 싶은 사람도 간혹 있었지만. 어찌 여흥이 본식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재미로 하지 않았다면 이미 나는 악어를 눈물 흘리게 하고, 그 뱀의 뱃속에 있었으리라.


고의적인 그리움과 완성되지 못한 사랑이 역설적으로 나를 완성하는 파편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바라던 바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낮이 아니다. 땅거미를 피해 해가 잠들어가는 황혼, 가장 큰 달이 비추는 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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