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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Nov 14. 2021

영면을 바라던 어느 날의 글

2020년 3월 30일

나의 세상이 뒤집히는 것을 눈앞에 두었던 당시에 스스로와 약속했던 것이 있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 연민은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에서만 건네 받을 . 당연히  되지 않았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낮에만 깊숙이 들 수 있는 . 공상 속에 있는 주제에 현실의 나를 측은히 여기는 뒤집힌 내가 있다.


절대 죽지  , 죽기 직전의 고통이 성장시키는 일부분은 이미 오늘날의 성장 한계치에 다다랐다. 내가 경계하고자 했던 것은 나의 의태. 죽은 척이 좋았다. 가만히 엎어져 사망을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항상  밖이 밝아왔다. 생각하던 새벽과 밤은 기억에서 사라진다. 죽어버린 기록이라고 생각하기로  탓인지 혹은 너무 잦아 구분이 안 되는 까닭인지. 그렇게 죽은 밤들이 즐비했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보기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탑승자가 안전하려면 그 충격을 받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서스펜션은 그냥 개발된 것이 아니다. 노면이 주는 스트레스를 직접 받은 누군가가 고심 끝에 고안했을 것이다. 부서진 바퀴, 부러진 꼬리뼈 등이 그 뒤에는 늘어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나 역시 오히려 흔들리려는 노력보다 흔들리지 않으려는 노력이 지탱하려 꾹 잡은 힘이 삶의 손잡이를 부러뜨렸다, 꽉 잡은 손아귀 안의 간절함은 다른 곳으로 새어나간 것이다.


이전엔 잠들기 전에 글을 썼다. 최근의 글은 다 잠을 깬 직후의 글, 아직 충분한 거리를 달아나지 않은 잠의 시선을, 이제는 채우기 귀찮은 뱃속의 허기를, 양치를 하러 가야겠다는 생각들을 모두 제쳐두고 회피한 채로.


꿈에  나와서 나를 쥐고 흔들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나의 삶을 모조리 버린 채 뛰어들어 빠져드는  느낌, 잠이 깨어지지 않길 바랐다. 다시는 오지 않고 현실에서는 일어날  없는 일들이 꿈에서는 생긴다. 항불안제를 먹지 않으면 꾸게 되는 꿈들은 정말 극과 극을 달린다. 행복의 극을 주거나, 혹은 슬픔과 불행의 극을 주거나.


각성상태가 오래 유지되고 정신은 잠들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몸은 그렇지 못하다. 잠들기 직전까지 무언가에 대해서 상고하고 손에서 놓지 못하는데, 퓨즈가 끊기듯이 몸의 전원이 꺼지면 그제야 잠에 든다. 질 낮은 선잠을 오래도록 잔다.


동생과 어머니가 해가 떠있는 내내 잠든 날 보고 죽은 거라고 착각해 깨우러 왔다. '죽었어?' 하고 묻는 어머니의 말투는 오로지 농담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그런 아들이 된 것이다. 혹시나, 언젠가, 어디서 인가 죽었을지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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