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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Nov 18. 2021

건네준 일은 잦으나 돌려받은 일은 없었다

2020년 4월 23일

나는 한편으로 차라리 너희가 모두 죽어버리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 슬픈 애도가 그 자리를 대신 채워 깊다란 푸른색을 만드는 게 낫다. 지금처럼 간헐적인 미움이 당황스레 머무르다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실용성은 용도가 노골적일 정도로 확실한 물건을 내놓고 쓰임새를 다하면 버려지도록 했다. 너의 손에 들렸던 테이크아웃 컵은 지금 어디 있는지? 달디 단 초콜릿을 감싸고 있던 은박지가 어디로 갔는지 생각하는 시간에 달빛이 함께한다. 드뷔시와 베토벤이 월광에서 슬픔을 발견하지 않았던가. 숱하게 많은 이들이 그랬지 않았던가. 나 또한 그렇다.

애써 숨을 붙이고 있는 기억들, 달려있던 산소호흡기를 내 손으로 떼고 서서히 죽기만을 곁에서 바라봤다. 기대와는 다르게 기억은 쉽사리 죽지 않는다. 아니, 죽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얼려도 태워도, 깨뜨려도 찢어도 어느샌가 다시 온전한, 혹은 더 뒤틀린 모습으로 살아남아 내 눈앞에 나타난다. 기억이 죽길 바라는 것은 수건이 다시 젖지 않는 상태가 되길 바라는 것과 같다. 수건의 역할은 물을 거두어가는 것이고 그 기능에 충실하지 못한 물건이 되었을 때 걸레로 격하되거나 혹은 자신이 놓이던 곳보다 낮은 곳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러나 소임을 다하려는 듯 놓인 자리에서 수분을 거둔다. 걸레로 얼굴을 닦지는 않지만 수건은 언젠가 바닥을 닦게 된다.

망상일 것만 같던, 혹은 비위가 약한 이들의 호들갑일 거라 추측하고 상상만 했던 역겨워서 구역질이 나는 일은 실제로 존재했다. 나는 공감을 잘 못한다. 그래서 남이 바닥에 토사물을 쏟아내던 눈물을 짜내던, 쓰러져 실신해버리던 모습이 안타까운 것과 마음을 내어 걱정하는 것은 나에게는 분리된 행위로 느껴진다. 자동차가 주행하다가 사람을 치었다고 해서 그 죗값을 물어 감옥에 자동차를 집어넣진 않는다. 그래서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나를 들이받고 깔아뭉갠 것이 그가 운전하던 반파되어버린 자동차인지 아니면 드러나지 않은 운전자의 저의인지. 그 생각의 끝에는 꼭 형용하기 힘든 역겨움이 뒤따른다.

이제 다르다는 것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눈을 피해 침묵해버려야 하는 필연적인 포기. 이해를 종용하는 것은 폭력이며 비가시적 억압이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양해를 구하는 것도 이제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역지사지는 후안무치를 몰고 다닌다. 역지사지라는 운전자는 사람을 자주 들이받아 죽여버린다. 운전대를 잡은 손을 떨어뜨리려 해 봐도 이미 도망쳐버렸다. 이미 죽은 자는 백골이 되어 바스러졌다. 신원 미상, 그렇게 죽은 슬픔에는 이름 없는 자의 이름이 붙었다.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니 네가 길가에 버리고 간 것들이 눈에 띄었다. 범퍼가 날아간 차, 안장을 도둑맞은 자전거,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구겨 신다 버린 신발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우리가 서로 발견한 폐허더미에서 각자 느낄 감정이 너무나도 다를 듯싶어 두렵고 무력한 느낌이 들었다. 모조리 강탈당한 소지품을 아련해하며 걷다 보니 쓸모 있는 것들을 빼간 내 지갑이 수풀 속에 널브러져 있다. 어련하실까.

어제 솟구친 짜증은 산불과 같이 빠르게 번져 우거진 관계의 깊숙함도 모조리 태워버릴 기세를 가졌었다. 살을 다 태우고 살라버리는 뜨거움이 오랜만이라 오히려 반가워했던 내가 미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불을 꺼뜨렸다. 너는 분명 또다시 누군가를 해치고 도망칠 테니까.

오랜 시간이 걸려서, 두 달인가? 그 이상인가? 모른다. 덜컥,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아, 이 쪽의 내가 숨이 막히면 가려진 저 쪽의 나는 숨통을 트는구나. 이쯤이면 괜찮다 싶어 반절로 줄인 항우울제는 격양된 기분과 불안정한 심리를 조금씩 풀어놓았다. 특별한 슬픔도 찾지 못했는데 눈알이 무겁다. 다행히도 눈물을 빌리는 일은 없었다. 언젠가 갚아야 될 일이 싫어서 오늘도 아랫입술을 깨물어 꾹 참았다. 헤픈 사랑도 예리하게 날을 세운 말도 목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 땅으로 추락해 부서지고 마는데 목적 없는 눈물을 빚질 수는 없다. 정말 슬프고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광경을 목도했을 때 원 없이 흘려버리겠노라고 또 다짐만 한다. 그러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기름을 거둔 후 기름을 잔뜩 머금은 채로 불쑥 나타나 물을 거두긴커녕 오히려 번들번들한 유막을 남긴 채 사라진다. 휘청휘청, 꼴불견으로 넘어진 이들이 헤맬 때 그 위에 불을 놓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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