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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Dec 19. 2021

복에 겨운 사람의 역한 한탄

2020년 7월 29일

터질 것 같은 느낌, 개인과 관계. 그 속의 매듭들.

모든 것에 마음이 서려있다. 너희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원망스러운 외침들에 절여진 채로 널려있다. 작업을 손에서 놓고 집에 와서 즐거이 놀다가도 대충 그 마음이 채워지면 당장 박차고 나가 나의 미래를 위한 일을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조급해진다. 조급함을 느끼는 내 뇌를 꺼내 짓이기고 싶을 정도로 그 타는듯한 갈증이 싫다. 여유가 있었다면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을 느끼고 앉았으니.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내가  길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 정말 짜증스러운 나날이다.  위를 덮어 반듯하게 공구리 쳐 놓아도 금방 망치로 미장을  깨부수고 안의 것을 꺼내어 보아야 한다. 내가 묻어 두려 안간힘을 쓰며  구덩이에,   안에 밀어 넣은 시체가 썩을 새도 없이 다시 우수수 쏟아진다. 대충 그것이 무엇이고, 누구이고.  죽어 마땅했는지를 다시 상기하고 나면 나는  시멘트 가루에 물을 부어야 한다.

그냥 단순히 행복할  있는 일을 하고 싶은 건데. 나의 소망은 단지 그것뿐. 열심히 사는 것은 질렸다. 진절머리가 난다. 느긋한 여행    생각 못하는 자신이 미워 죽겠다. 갈구하던 여유를 용납하지 못하게 된  자신이 처량해 남들처럼 여유를 누리게 해줄까 싶다가도 이내  손을 거둔다. 왜냐면  아직 멀었거든. 내가 이미 아주 오래전에 정해둔 기준에  아직도 미달이거든.

절대로 그 허들을 낮출 수는 없다. 넘지 못한다면 죽음뿐이다. 덜 고통스러운 편도 그 편일 것이다.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미안하고 용서를 구할 마음이 들었다가도 싹 사라진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현재뿐이니까. 너희들이랑 만든 과거랑 수라 같은 현실.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 알 수 없어서 좋다. 여태껏 이랑 다른 일을 상상하면 최고.

이쯤 되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나의 삶의 노력은 분명 내가 자부했는데. 보증을 서준 사람이 나라서 그런가? 효력을 잃은 기분이다. 누군가는 올라가고 누군가는 파묻히는 것이 일상인 이곳에서 내가 나를 올려야지 삽으로 내려칠 수는 없다.

고통을 주는 것은 나의 세상에서는 사랑이 아니다. 그 순간은 사랑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기댈 수 없다. 왜냐면 그건 사랑이 아니니까. 누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당연히 XX은 네 편이라고. 근데 웃긴 게 모든 사람들이 전적인 자신의 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XX를 나는 한 번도 온전한 내 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심 감동했다. 아, 내 XX는 내 편이 되어주고 싶어 하는가 보다, 나는 너희가 절대적인 내 편이라고 생각한 적 없는데. 하고.

힘들어도 머릿속에 그 떠오르는 첫 번째가 없는. 언제나 내가 힘들 때 떠올리는 이는 그 상황을 타계한 미래의 나였다. 극히 개인적인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어떻게 감히 상상이나 하겠는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어찌 지지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는가.

재미없다. 정말 재미가 없다. 그래도 재미있는 척하고 즐거운 20대 인척 열심히 사는 청년인 척해야지. 그런 위선이 나를 올려줄 테니까. 수단으로 이루어진 삶이 모순적인 나를 익살스럽게 보이게 한다.

어찌 모순을 견디면서 산단 말인가. 그냥 목 뼈가 부러지는 게 낫다. 골방에서 공부하고, 손이 터가며 작업하고. 그래도 행복은 찰나이니까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한데 영원한 찰나를 누리는 사람을 보니 더더욱 목이 부러졌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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